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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봅시다] 이라크전 보도 서술어 선택에도 주의해야

"밝혔다" 객관적, "주장했다" 주관적 의미

서정은 기자  2003.04.02 11: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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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은…밝혔다.” “이라크 정부는…주장했다.”

국내 언론이 이라크전의 피해상황과 전황을 보도할 때 미·영 연합군측 발언은 주로 ‘밝혔다’ ‘발표했다’고 쓰는 반면 이라크측의 입장은 ‘주장했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밝히다’는 “일의 옳고 그름을 가려 분명하게 한다”는 의미이고 ‘주장한다’는 “자기의 학설이나 의견 따위를 굳이 내세운다”는 뜻이다. 전쟁의 당사자인 미·영 연합군과 이라크군이 연일 전황에 대해 엇갈린 주장을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각각 ‘밝혔다’와 ‘주장했다’고 표기하는 것은 자칫 한쪽 편을 들어주는 보도태도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에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KBS의 경우 미군은 “밝혔다”로, 이라크측은 “주장했다”로 표기하는 경우가 눈에 띠게 많아 내부 기자들 사이에서도 비판을 받고 있다. KBS 9시뉴스는 미군 입장에 대해 “미 중부사령부는 후세인 대통령이 화학무기 사용을 명령했다는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미 국방부는 이라크군 8000여명이 투항했다고 밝혔다” 등으로 멘트한 반면 이라크 정부와 공보부에 대해서는 “민간인 4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크게 다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간인 사상자가 200여명을 넘어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등으로 보도했다.

MBC는 대부분 양측의 발표와 주장을 ‘밝혔다’와 ‘주장했다’로 균등하게 표기했으나 지난달 24일 뉴스데스크에서는 “양측의 전황 발표가 엇갈리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이라크는 미군을 100명 이상 사살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미군 측은 단지 10명만 전사했다고 발표했다”고 전했다.

신문들도 일부 보도에서 이라크측은 “주장했다”로, 미군은 “밝혔다”로 표기하는 경우가 눈에 띠었다. “이라크 공보장관은 ‘바스라에서 116명이 사망하고 659명이 부상했다’고 주장했다” “이라크 장성 1명을 생포했다고 영국군 대변인이 발표했다”(동아) “이라크군 전차 8대와 몇곳의 대공포대와 대포를 파괴했다고 미군 측은 밝혔다…나지 사브리 이라크 외무장관은 ‘연합군에 함락된 도시는 하나도 없다’고 주장했다”(조선)

화면으로 내용이 확인되거나 새로운 사실을 검증할 수 있게 공개한 경우, 또 스스로의 잘못을 시인한 경우에는 ‘밝혔다’라는 표현이 맞다. 그러나 ‘이라크가 화학무기를 사용할 것이라고 미군은 밝혔다’라거나‘바스라시 외곽까지 진격해 함락을 앞두고 있다고 밝혔다’ 등 검증되지 않은 일방의 목소리는 ‘밝혔다’가 아니라 ‘주장했다’ 또는 ‘말했다’로 표기해야 한다. 기자들은 급박하게 기사를 쓰면서 같은 단어의 중복을 피하려다 보니 ‘밝혔다’와 ‘주장했다’가 기준 없이 혼선을 빚은 측면도 없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긴급한 취재 현실을 감안한다고 해도 ‘말했다’ ‘밝혔다’ ‘주장했다’ ‘발표했다’ ‘강조했다’ 등 수사 하나 하나가 갖는 의미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방송사 국제부 기자는 “대부분의 외신들이 미군의 주장을 주로 ‘밝혔다’고 표기하는데 외신 의존이 높은 국내 언론들이 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자체 보도에서도 ‘밝혔다’로 가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한편 미·영 연합군에 대한 표기에서도 대부분의 언론들이 ‘미·영 연합군’과 ‘미·영 동맹군’ ‘연합군’을 혼재해 표기하고 있다. 앞의 두 용어는 모두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지만 UN군을 연상케 하는 ‘연합군’으로 단독 표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정은 기자 punda@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