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노조 위원장을 지낸 바 있는 국민일보 김용백 기자가 지난 1일 기자실 개선 문제와 관련한 의견 및 제안을 보내왔다. 김 기자의 제안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기자실 문제’와 관련해 매우 구체적으로 참고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2회에 걸쳐 김 기자의 글을 게재한다.
노무현 정부의 기자실 개선은 지나치게 언론개혁을 내세우며 서두르고 있어 스스로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정부의 언론정책에는 분명히 긍정할 만한 점과 수용하기 곤란한 점이 있다. 이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기자실 개선으로 국가정보에 대한 접근을 쉽게 하려는 취지는 십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언론정책에 있어 개혁과 진보를 내세우는 선동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통제하려는 노력을 당사자인 언론으로 하여금 일방적으로 수용하라는 것은 곤란하다. 지금의 섣부른 정부의 논리에는 언론이 ‘전쟁’ 또는 ‘팽팽한 긴장감’을 수반하는 치열한 공방을 거치지 않고서는 서로의 위상을 찾기 어려울 것 같다. 기자실 개선 문제는 정부가 정보를 얼마만큼 투명하게 공개하는지를 따져 보고 난 뒤 본격화해도 늦지 않다.
정부는 “언론 스스로 바뀔 여지가 없을 것 같아 정부가 먼저 입장을 변화시킨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정부가 언론개혁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사전에 충분한 의견수렴이 필요하다. 사회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언론문제를 심도있게 다뤄야 한다.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고 어디로 변화해 가는지를 언론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 못할 리가 없다. 새 정부가 언제 언론에 변화를 하자고 권유하거나 물어본 적이 있는가. 일방적인 것은 결코 쉽게 이뤄질 수 없다.
우선 기자실 개선 타깃이 과거 우월적 지위를 누려온 매체에, 특히 신문매체에 집중돼 있어 좀더 포괄적이고 미래지향적이지 못한 점이 흠이다. 일단 과거 메이저 매체에 의해 주도적으로 이뤄진 취재관행 개선이라는 미명하에 마이너 온라인매체의 접근을 열어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대통령 선거에서의 논공행상과 향후 대중 영합적 정치를 노리고 있음을 노골화하는 것으로 이해되기 쉽다.
또 충분한 정보공개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권력과 언론이 각자의 입장을 취하자고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있다는 데서 언론개혁의 진정성이 약하며 접근철학과 개념부터 정립할 필요가 있다. 원래 권력은 항상 권한, 정보,재정을 독점적으로 운용하면서 생명을 연장하고 싶은 속성이 있다. 언론은 펜 하나만을 갖는 민간인 신분의 언론인으로 권력을 감시한다. 그래서 권력의 활동 낱낱을 국민 앞에 드러내 올바른 여론형성과 국가운영을 꾀하고자 노력하는 헌법적 권리의 실체이다.
언론자유와 권력적 속성은 물과 기름이다. 두 가지 모두 국민으로부터 나오지만 대표집행과 대표감시라는 차원에서 결코 화합하기 어렵다. 억지로 화합할 경우 국민들, 특히 힘없는 자들만 고통받는 불행한 사회로 나아간다. 따라서 결코 일방의 요구에 의해 결정되어선 안된다.
정부기관 공보실이 기자들과의 관련업무에만 신경을 쓰는 부서로 인식한 듯한 태도도 잘못됐다. 공보업무는 기자들에게 국한되지 않고 일반인에게까지 해당한다. 그동안 정부기관이 일반 국민들에게 얼마나 폐쇄적이고 고압적이었는가를 먼저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 공복(公伏)이란 단어가 진정으로 뭘 일컫는지를 정확히 인식한다면 먼저 각 공보실로 하여금 정부정책에 궁금해 하고 따지고 싶은 일반 국민들을 위해 민원부서가 될 자세부터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정부와 공무원들은 ‘포괄적인’ 국민으로부터 거둔 세금으로 급여를 받는 국민의 공복이다. 정부청사 등 공공기관의 시설이나 공간도 모두 세금으로 마련한 것이다. 기자들은 국민이면서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다. 더구나 같이 세금을 내는 형제, 자매, 이웃으로부터 언론자유를 권한으로 부여받아 권력을 감시하고 올바른 정부행정과 정부정책이 이뤄지도록 활동을 도모한다. 따라서 이를 어떠한 집단이나 세력이 배타적이고 독점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바로잡아야만 한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국민으로부터 그 기능과 권한을 부여받은 취재기자에 대해 대통령을 비롯한 국민의 공복들이 마치 주인인양 시설과 공간을 비우라고 일방적으로 행세하고 있다. 이는 언어도단이며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몰염치한 짓이다. 집주인과 세입자의 어려운 관계도 설정할 줄 모르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기자실과 기자단은 애초부터 권력기관으로서의 권위주의 정부가 국민 위에 군림하면서 비롯됐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바람직하지 않은 정보나 그릇된 정부정책을 외부에 함부로 알리지 말라고 경고하고 이를 철저히 통제할 것이니 군말 말고 따르라는 청와대 발언은 민망하기 짝이 없다. 내부 고발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떠들던 때가언제인가. 취약한 정부의 자화상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정보와 정책을 가능한 한 최대로 투명하게 공개할 때 국민이 참여하는 정부를 실현할 수 있음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