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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주장] 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의주장  2003.04.09 14: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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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은 ‘신문의 날’이었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매체환경의 변화와 그로 인한 커뮤니케이션의 혁명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과연 신문이 21세기를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부호가 새겨진다. 어쩌면 조만간 ‘신문의 날’이 더 이상 의미 없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듯 요즘은 누구나 신문저널리즘의 위기라는 말을 하고 있으며 특히 종이신문의 미래가 있는가를 회의하고 있다. 굳이 인터넷매체의 부상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세계 각국의 신문산업이 총체적인 위기국면에 빠져들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어떤 이는 신문산업의 위기를 “마치 전장에 보낸 아들의 ‘사망통지서’를 받는 느낌과 같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개별 신문에 따라 사정은 달라지겠지만 종이신문의 미래에 조종이 울리기 시작한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러면 신문의 미래는 정말 없는가? 암 선고와 다름없는 시한부 생명을 통보 받은 신문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우리 기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모두 이직을 준비하며 신문기자라는 직업이 사전에서 사라지게 될 날을 기다려야만 할까?

물론 모든 사람들이 신문의 장례식을 치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5월 벨기에에서 열린 세계신문협회 연차총회에서 뉴욕 타임즈 발행인인 아서 설즈버거는 ‘신문-미디어의 과거와 미래’란 주제강연에서 신문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는 여섯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그 중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부분은 독자에 관련된 부분이다. 그가 가장 첫 번째로 든 신문의 생존이유는 신문이 모든 관심을 독자에 집중시킨다는 점이다. 신문에게 독자는 힘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30년 가까이 워싱턴포스트 기자를 역임한 워싱턴포스트 현 편집인 다우니 주니어도 <뉴스의 뉴스>라는 책에서 ‘훌륭한 신문’(great newspapers)만이 극심한 경쟁체제, 디지털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정의하는 ‘훌륭한 신문’이란 사회, 정치, 정부, 경제, 스포츠와 오락, 전세계의 중요한 사건을 균형있게 다루며 정보와 해설 그리고 논평의 사실성을 중시하는 신문이다.

신문저널리즘의 생존비결을 터득하고 있는 그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은 훌륭한 ‘기사’와 ‘독자’라는 신문의 본질적인 요소다. 결국 기자들이 신문산업의 출발지인 원점으로 되돌아가서 독자를 위한 기사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신문사들은이제 독자 위에서 군림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독자를 섬기는 모습으로 변신해야만 한다. 그 동안 우리는 신문생존의 기본이 되는 ‘독자’를 너무 도외시하지 않았나 반성해본다. ‘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신문의 ‘존재이유’이기도 한 ‘독자’에게서 그 실마리가 풀려나올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