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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통해 바라본 '권력의 선전도구' 언론

[책으로 본 미디어세상] 지배권력과 제도언론

이원락 전 기협국장  2003.04.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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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락 기자협회 전 편집국장



우리에게 미국은 모든 면에서 닮아야 할 이상형이었다. 인권 존중이 그랬고 민주주의가 그랬다.

그러나 최근 미국이 보여주는 행태는 과연 닮을 가치가 있는 사회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9·11 테러 이후 보여주는 비이성적 반인권 조치나 모순 가득 찬 이라크 침공에 대한 조야의 맹목적 지지를 보면서 사람들이 종전에 느끼던 부러움이 살짝 비웃음으로 바뀌는 듯 하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이전까지 미국 언론은 우리 언론의 교과서였다. 하지만 미국 언론의 이라크 침공 보도는 우리가 그토록 경멸하던 정부의 선전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이라크 침공은 세계인 사이에 반미 감정을 확산시키면서 미국 언론에 대한 환상을 깨는 계기가 된 듯 하다.

<지배권력과 제도언론>(알철 지음, 강상현 윤영철 역, 나남)은 이런 현상이 어제오늘 일이 아님을 설명하는 책이다. 원제(Agents of power)에서 엿보이듯이 언론이 원래 권력의 선전 도구였음을 역사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언론의 원시 형태가 시작된 로마 시대부터 언론인은 권력의 심부름꾼 노릇을 했다. 현대 언론 자유의 이론적 토대로, 사상의 자유 시장에서 진리가 스스로 명확해진다는 ‘자가 수정의 원리’(self-righting principle)도 사실은 경제적 동기 때문에 지지 받았지 표현의 자유 때문은 아니라고 한다. 오늘날에는 정치의 대중화와 언론의 상업화가 언론의 권력 도구화 현상을 강화하고 있다.

서구 사회에서만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 공산주의 언론이 그랬고, 또한 제3세계에서도 언론은 권력의 도구였다는 지적이다.

1984년 초판을 번역한 이 책은 공산주의 언론이나 신국제정보질서와 같이 지금은 관심에서 멀어진 문제들도 다루고 있어 급변하는 언론 환경 속에서 조금 낡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또한 우리나라처럼 언론의 영향력이 막강한 사회는 잘 설명하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언론-권력의 관계에 대한 역사적 조명은 시대와 무관하게 유용하며, 특히 오늘날 미국 언론이 보여주는 행태의 뿌리를 잘 설명하고 있다.

한편 일부 지식인들은 이 책 내용과 같은 맥락에서 오늘날 미국 언론의 행태를 폭로해 왔다. 이들은 베트남 전쟁에서 엘살바도르, 동티모르 등에 이르기까지 미국 언론은 특히 대외 정책에서 철저히 정부의 선전 도구였음을 보도 분석을 통해 꼼꼼히 입증하고 있다. 국내에 널리 알려진 인물은 노옴촘스키로 번역서로는 <프로파간다와 여론>(이성복 역, 아침이슬)이 있다.

하지만 이 분야에 관한 가장 뛰어난 책은 핼린(Daniel Hallin)의 다. 베트남 전쟁 보도를 분석한 이 책은 언론이 기본적으로 권력의 선전 도구이지만, 권력 내 분열이 생기면서 때로는 어느 정도의 자율성도 확보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보면 이라크 침공에 대한 미국 언론의 보도가 베트남전 보도의 복사판으로 흐르고 있음을 느끼게 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를 예측할 수 있게 한다. 번역본이 없어서 주제로 삼지는 않았지만, 이번 침공에 대한 미국 언론의 태도가 궁금하다면 꼭 보아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