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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독립언론 실험 4년

경영 안정·지면 차별성 여전히 과제로 남아

김상철 기자  2001.08.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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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구조 개혁은 언론개혁의 주요 과제로 줄기차게 제기돼 왔던 사안이다. 그렇다면 소유구조 개혁 그 이후의 문제는? 본보는 독립언론 출범 4년째를 맞은 경향신문과 문화일보, 소유구조 개혁을 목전에 두고 있는 대한매일과 연합뉴스, 그리고 88년 파업투쟁의 성과로 소유, 경영, 편집의 분리를 이룬 부산일보를 통해 이들의 고민과 성과를 짚어봤다. 독립언론은 생존을 담보로 한 지난한 실험의 연속이라는 점, 때문에 소유구조 개혁은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언론개혁의 ‘완성’이 아니라는 것을 이들 언론사들은 보여주고 있다.







“세무조사와 사주 고발 등 일련의 ‘언론정국’ 속에서 제대로 보폭을 잡지 못했다. 그래도 권력에 대한 비판은 언론의 기본인데 이 부분을 너무 도외시했다.”

“세무조사 등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다고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중립은 기회주의라고 본다. 오히려 시비를 뚜렷이 가리는게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각각 경향신문, 문화일보 기자가 언급한 자사 지면에 대한 지적이다. 어찌 보면 양면의 거울 같은 두 기자의 엇갈린 평가는 독립언론을 표방하는 경향신문, 문화일보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독립언론 출범 4년째를 맞고 있는 이들 신문은 구성원 개개인이 주인으로서 다양성의 총화를 이룰 것이냐, ‘사공 많은 배’의 전철을 밟을 것이냐 하는 기로에서 한창 뱃머리를 틀고 있다.

지난 98년 독립언론이라는 새로운 시험대에 들면서 두 신문에게는 두가지 과제가 주어졌다. 하나는 경영 안정성, 또다른 하나는 지면 특화, 지면 차별성 확보였다.

그러나 “소유구조 개혁 이후 최대 과제는 재무구조 개선”이라는 경향신문 간부의 표현처럼 무엇보다 경영상황이 발목을 잡았다. 그런 면에선 시기도 좋지 않았다. 광고시장은 주춤거리기 시작했고 크게 보면 신문의 하락세는 방송보다 훨씬 가파랐다. 줄어든 광고에 신문시장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겹쳐 이들 독립언론은 더 큰 시련을 겪어야 했다.

문화일보의 한 기자는 “경영 차원에서 보면, 독립의 의미는 시장이라는 정글에 알몸뚱이로 내던져진 것이었다”고 표현하며 “이 때문에 생존논리에 압도돼 상대적으로 지면에 대해 고민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98~2000년 양사 경영상황을 살펴보면, 경향신문은 매출액이 690억원대에서 99년 877억원으로 늘었으나 2000년 다시 806억원으로 줄었다.문화일보는 420억원→531억원→599억원으로 점진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경향신문은 지난해를 자본잠식 상태로 마무리했고 문화일보는 98년 흑자 이후 99~2000년 적자로 돌아섰다.

경향신문의 경우 올 들어 스포츠지 창간에 참여하는 등 공세적인 경영으로 난국 타개에 나선 상태이며 문화일보는 이사진에서 부장급까지 구조조정을 단행한 바 있다.

독립언론의 지면 역시 여전한 과제다. 경향신문은 지난 3월 편집국 워크숍을 비롯해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지면 차별화에 대한 논의를 거듭해왔다. 핵심은 ‘진보’다.

한 기자는 “세무조사 정국을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지면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진보적인 색채를 어떻게 지면에 구체적으로 구현해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와 그 ‘속도’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견이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문화일보는 지난 5월 편집개선위원회를 출범시킨 이후 석간신문이 갖는 위상과 기존 신문제작 문법에서 탈피한 새 지면 모색을 계속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특히 편집 책임자들의 개혁 마인드 제고와 함께 사원들의 주인의식이 강조되는 것도 관심을 끄는 부분이다. 먼저 양사 기자들 사이에서는 편집간부들의 우선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경향신문의 한 기자는 “사실 편집 책임자들이 개혁 마인드를 바탕으로 리더십을 발휘한다면 지면의 변화는 좀더 빨리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올 3월 워크숍을 앞둔 경향신문 기자들의 자체 설문이나 4월 문화일보 노조가 실시한 설문에서 모두 사설, 칼럼의 논조와 기사 방향의 불일치가 문제점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다른 한편 사원들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이니 만큼 주인의식 강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남다르다. 그 절실함은 단순한 표어 이상이다. 문화일보의 한 기자는 “한때 ‘독립언론의 기자들은 다 평론가들인가’ 하는 내부비판도 제기됐었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오너가 있는 언론사는 내부 비판과 견제만 확실히 해주면 되는데 독립언론은 그럴 수 없다.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할 기자들이 단편적인 지적에 머물러 ‘걱정만 하고 있는’ 모습도 문제다.”

이 기자는 “하드웨어도, 돈도, 인력도 상대적으로 취약한 상태에서 시장변화에 보다 빠르게 적응하고 대응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직접 뛰어야지 비평만 해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물론 지나온길의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기자들은 지면의 경우 ‘재벌신문’ 시절에 비하면 급격한 변화가 일었고 그 이후에도, 적어도 답습에 머무르지는 않았다고 평가한다. “기자들이 회사의 최대 강점으로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소유형태를 꼽고 있고 그 독립의 내용을 채워나가고 있다는 자부심이 우리에겐 있다”는 경향신문 한 간부의 말도, “쓰고 싶은 기사는 쓸 수 있는 풍토이며 그만큼 편집권의 행사가 투명하다”는 문화일보 기자의 말도 궤를 같이 하는 부분이다.

98년 3월 독립언론 태생 이후, 그 행보에 대한 평가는 한 기자의 표현처럼 ‘그동안 독립언론이라는 장점을 제대로 활용해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왔는가’라는 자기 점검에서 출발한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새로운 신문, 큰 틀의 지향은 명확하되 채워나가야 할 독립의 공간은 아직 적지 않다. 4년째로 접어든 독립언론의 실험기간이 길지 않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