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민주화되는 과정에서 각계의 기여도를 따진다면 사실 언론은 할 말이 없다. 4천만의 술안줏감인 정치권보다도 기여한 바가 적다는 게 필자의 솔직한 판단이다.
정치권은 그래도 주기적으로 펼쳐지는 ‘선거’라는 타율적 정화과정을 거쳐 왔다. 정권교체와 유권자들의 심판을 통해 미흡한 대로 독재자는 처벌받았고 비민주적 정치인은 퇴출당했다. 반면 몇몇 족벌언론들은 민주화의 대세와는 관계없이,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제도언론의 폐해에 대해서라면 노무현 대통령만큼 할 말이 많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정계입문 이래 그는 조중동 등 제도언론의 악의적 보도에 시달려 왔고, 이들의 악의적 보도는 지난 대선에서 그 절정에 이르렀다. 사실 노 대통령처럼 십수년간 제도언론으로부터 일관되게 시달림을 받아왔다면 언론에 대한 피해망상증 내지는 노이로제에 걸리기 십상이다. 최소한 언론에 대해 평상심을 갖기가 대단히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된다.
노 대통령과 제도언론의 이러한 ‘악연’을 감안하면 취임 이래 1주일이 멀다 않고 각종 언론정책이 쏟아져 나오는 배경도 일면 수긍이 간다. ‘오죽 언론에 한이 맺혔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언론정책은 아무래도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모든 언론매체에 공평한 정보접근을 보장하고 언론과 권력 간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조성하겠다는 기본취지에 찬동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구체적 추진과정에서 드러나는 무모함과 엉성함, 그에 따른 소모적 논쟁 등의 폐해가 너무도 크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취재원 실명 표기 요구’나 ‘공무원의 기자 면담 보고 의무화’ 등이 언론의 기본을 모르는 넌센스라는 것은 이미 지난 글에서 지적한 바 있다. 정부는 또 부처 기자실을 없애고 통합 브리핑룸으로 대체하며 기자들의 공무원 취재는 사전 약속에 의해서만 하라고 요구하면서, 언론에 대해 정부기관 위주의 취재관행에서 벗어나라고 주문했다. 말인즉슨 옳은 얘기다. 기사의 80∼90%를 관급 뉴스로 때우는 우리 언론의 낡은 보도관행은 물론 고쳐져야 한다.
그런데 정부측의 일방적인 취재시스템 개혁조치로 언론들이 선뜻 그러한 개혁에 나설까? 오히려 권력에 대한 감시라는 언론의 기존 기능까지 약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기자들이상시적으로 감시를 하지 않아도 우리 공무원들은 투명하고 공정하게 일 처리를 할 것이라고 노무현 정부는 믿고 있는 모양이다. 과연 그럴까?
각 부처에 언론보도를 긍정, 단순, 건전 비판, 악의적 비판, 오보 등 5가지 범주로 나눠 일일 보고토록 한 조치는 또 무엇인가? 그 기준이 무엇인지도 의심스러울 뿐더러 도대체 그렇게 해서 뭘 어쩌겠다는 말인가?
노무현 정부의 언론정책은 이미 한나라당의 이창동 문화부 장관 해임건의안 제출이라는 소모적 정쟁을 낳고 있다. 이 장관이 허점투성이의 언론정책을 내놓기보다는 문화예술인 출신답게 획기적인 문화정책을 내놓았다면 오히려 언론과 야당의 갈채를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마찬가지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언론이 잘해서가 아니었다. 형편없는 언론보도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의 가슴과 마음을 휘어잡는 행동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대권을 거머쥘 수 있었다.
대통령이 되고 난 후에도 노무현과 제도언론간의 관계는 그리 달라질 것이 없다. 국민들을 보살피며 어루만져주고 감동시킬 수 있는 경제정책, 외교정책, 사회정책, 문화정책 등을 내놓을 수 있다면 제도언론의 왜곡보도를 겁낼 필요가 없다. 정책으로 언론을 바로잡겠다는 것은 권력의 교만일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노 정부의 언론정책은 소모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