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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주장] 공배제 본질 왜곡 말기를

우리의주장  2003.04.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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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문화부 장관이 신문공동배달제(공배제)에 대한 지원 의사를 국회에서 밝힌 뒤 공배제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조선, 중앙, 동아 등 소위 빅3 신문들은 논점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공배제 실시와 이에 대한 정부 지원 방침을 자율시장을 해치는 행위로 규정해 극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나아가 신문고시와 함께 공배제가 언론계를 재편하려는 불순한 의도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영향력이 막강하고 사회적 책임이 있는 주요 신문들이 이처럼 공배제를 집중 공격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 공배제 실시에 대한 사회 역사적인 맥락이나 본질이 왜곡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배제는 말 그대로 각 신문의 배달부문만 떼어내 별도의 공동배달회사에 업무를 맡기는 제도다. 각 신문사가 지국의 형태로 별도의 판매망을 갖춰 배달과 판매를 함께 진행하는 현재의 방식은 개별 신문사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물류비용의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 그 동안 자전거, 비데 등 과다한 경품 제공과 신문사 지국의 살인사건 등 과잉 판촉경쟁으로 인한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가 아닌가.

사회적 비용절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론시장의 자유로운 소통이다. 현재와 같이 독자적인 지국망을 통한 신문배달은 신문의 품질이 아니라 신문사의 자본력으로 여론시장을 좌우하도록 하는 메커니즘에 다름 아니다. 중소도시 등 지방 독자들의 경우 배달이 안돼 지국이 있는 몇몇 신문 외에는 다른 신문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독자의 요청에 따라 어떤 신문이든 배달해주는 공배제는 다양한 여론이 전달될 수 있는 여론의 고속도로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즉, 공배제는 독자들의 신문선택권을 보장해줌으로써 민주적인 여론형성을 도와주는 장치이다.

스웨덴과 독일, 프랑스 등 세계 여러 민주주의 나라에서 공배제가 이미 오래 전부터 시행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공배제 실시에 대해서는 학계와 언론계에서 그 동안 공감대가 형성돼 왔다. 한국신문협회는 1999년 이사회에서 공배제 시범실시를 의결한 바 있으며, 현재 과천에서 5개 언론사의 참여로 시행되고 있는 공배제의 추진체도 전국언론노동조합이다. 이는 공배제가 특정언론의 유, 불리 등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가 아니라 그만큼 사회적 과제라는 것을잘 보여준다.

물론 공배제 회사에 대한 정부의 지원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여론형성의 건전한 메커니즘을 만들기 위해 국가가 적극 개입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의견도 있는 반면에 정부의 인위적인 지원은 또 다른 논란과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반대론도 있다. 좀더 활발한 토론이 필요한 대목이다.

그러나 언론 발전의 주요 계기라고 할 수 있는 공배제 자체에 대해서는 각 언론사가 자신의 이해관계를 따져 사안의 본질을 호도하거나 왜곡시켜서는 안된다. 매사가 그렇지만 영향력이 큰 언론일수록 신중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