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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개입과 시장 정상화는 별개"

김상철 기자  2003.04.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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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조선·중앙, 시장논리 따른 자유경쟁·독자선택권 강조

공배제는 유통시장 개선 목적…‘특정언론 지원’ 주장은 문제







지난 17일자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이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의 “상위 3사 점유율 75%” 발언과 공동배달제 지원 방침을 거론, 정부의 ‘특정언론 죽이기-키우기’라고 몰아세우자 경향신문 국민일보 문화일보 세계일보 한겨레 등 공배제에 참여하고 있는 신문들은 일제히 반박에 나섰다. 이들 신문들은 언론노조가 중심이 된 공배제 추진현황과 해외 지원사례를 소개하며 “정부의 시장개입과 신문시장 정상화는 별개의 문제”라고 못박았다. 아울러 “돈으로 신문시장을 싹쓸이하는 여론의 독과점을 막는 것도 언론자유 못지 않게 주요한 과제”라며 “여론시장의 독점을 ‘독자의 판단’으로 분식하고 공배제가 시장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강변을 서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시장논리가 성역인가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은 사설에서 “현재의 신문질서는 특정신문을 선호하는 독자들의 선택행위에 의해 오랜 세월에 걸쳐 자리 잡은 것”으로 “상위 3사의 시장점유율 조정은 정부가 국민의 선택에까지 개입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매우 신중하게 사회적 논의를 거친 뒤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이창동 장관 발언으로는 정부정책의 가시화 여부를 가늠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 신문들의 지적처럼 독과점 여부를 판단할 자료나 판정기준 역시 마련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기존 발표자료들을 종합해보면, 2000년 현재 국내 가구 수는 1439만1374가구(통계청)이다. 2002년 4월~12월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3개사가 ABC협회에 보고한 자체 발행부수는 647만~652만부 가량이었다. 지난 2001년 광고주협회 조사에서는 전체 가구의 51.3%가 신문을 구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고주협회 조사결과를 통계청 조사에 대입하면 신문구독 가구는 783만여가구로 유추할 수 있다. 물론 가구별 병독지나 가구 외 구독 현황 등을 감안해야겠지만 신문시장에서 차지하는 동아 조선 중앙 3사의 비중이 적지 않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실제 수치를 떠나 그동안 언론계 안팎에서 제기돼왔던 시장 독과점, 여론 독과점에 대한 우려와 개선 요구가 “점유율 조정은 초헌법적 발상”이라는 비판에 묻혀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독과점 문제는 판매시장 정상화와 뗄래야 뗄 수 없는사안이다.

지난 1월 언론인과 언론학자 439명을 대상으로 월간 <신문과 방송>이 실시한 설문에서 가장 많은 50.2%가 ‘신문시장 정상화’를 ‘정부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꼽았고, 지난 2001년 발행인과 편집국장을 대상으로 한 언론재단 조사에서 ‘시장 점유율 제한’이 두 번째로 시급한 언론개혁 과제로 거론된 것은 독과점 문제에 관한 언론계의 ‘체감지수’를 반영하고 있다.

정부의 공배제 지원 방침과 관련 ‘특정지 공동배달 공자금 지원 물의’ ‘정부 신문시장 개입 파장’ 식의 접근이나 “공동판매 책임자가 정부에 우호적인 언론에 대해서는 많이 팔아주고 그렇지 못한 신문은 구독하지 않게 함으로써 심각한 왜곡현상이 발생할 우려가 높다”는 한나라당 인식 역시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

공배제는 처음부터 언론노조 주도로 신문사간 중복투자를 없애고 유통시장을 효율화하자는 취지에서 추진됐으며 모든 언론사에 문호를 개방해왔다. 특정지를 위한 것도, 정부가 추진한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배달은 공동으로 하되 판촉, 수금 활동은 각사가 별도로 진행하는 것으로 ‘책임자가 정부에 우호적인 언론은 많이 팔아주고’ 할 여지가 없다. 이 때문에 문화관광부는 문화산업진흥기금 융자의 근거로 “신문산업은 국가 차원의 유통네트워크 기반에 해당하는 것으로 공배제 지원은 신문유통의 현대화를 구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공정경쟁’ 판매현장과 괴리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은 정부개입을 비판하는 주된 근거로 ‘시장논리에 따른 자유경쟁’ ‘독자의 선택권’을 강조하고 있다. 현실은 그러나 말처럼 공정하게 돌아가고 있지 못하다. 일례로 공배제의 경우 정부가 지원하지 않더라도 과거 읍면 단위를 시작으로 수도권 인근까지 광범하게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반면 판매 관계자들은 “규모가 작은 신문사들의 경우 지국을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동아 조선 중앙 등의 지국에 배달을 위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실상 기존 거대신문사 위주로 지국이 통폐합되는 셈이다. 한 신문사 판매국장은 “그나마 조금만 늦어도 배달을 잘 안해준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최근에는 한 신문사가 판매시장의 불공정거래행위를 비판한 다른 신문사 보도를 문제 삼아 산하 지국에 ‘이 신문을 배달하지 말라’는 방침을 통보하기도 했다. 또다른신문사 판매국장은 “아파트의 경우 자연발생적으로 공동배달이 진행되는데 이른바 마이너신문은 부수가 적기 때문에 배달료를 더 지불해야 한다”며 “메이저신문이 1부당 배달료를 1500원 정도 지불한다면 마이너신문들은 2000~3000원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여러모로 ‘바닥’에서부터 공정경쟁의 원칙이 흔들리는 것이다.

‘독자의 선택권’이라는 주장의 다른 한편에는 자전거로 대표되는 판매시장의 물량경쟁이 엄존하고 있다. 지난해 한 신문이 전국적으로 자전거를 살포한 이후 실제로 올 들어 신문사 간 순위가 바뀌었다는 조사자료가 여러 곳에서 나오기도 했다.

이와 관련 조선일보는 공정위의 신문고시 개정 추진을 ‘정부 시장개입 파장’으로 묶어서 보도했다. 그러나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정부의 직접 규제 요구가 제기된 것은 비단 언론단체 차원에서만이 아니었다. 본지가 지난 2월 전국 32개사 판매국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87%는 “자율규제의 실효가 없다”고 평가했으며 무려 97%가 “공정위의 직접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난 한해 동안 자율규제기구인 신문공정경쟁위에서 경품 제공 등 규약위반으로 부과한 총 위약금은 32억6900만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동아일보가 20억여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중앙일보(5억4000여만원) 조선일보(3억5000여만원) 등이 뒤를 이었다. 판매국장들로부터 제기된 자율규제 실효성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와 정부의 직접규제 필요성은 사실상 이들 3개사가 자초한 셈이다. “정부의 시장개입과 신문시장 정상화는 별개의 문제”라는 인식은 이같은 현실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김상철 기자 ksoul@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