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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를 켜며] 독자의 선택권

김상철 기자  2003.04.23 1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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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서 이른바 ‘마이너 신문’ 구독이 어렵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구독신청을 했지만 신문이 배달되지 않아 지국에 물어보면 “지국 형편이 안돼 배달이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는 것이다.

부수는 적고 상대적으로 배달원 인건비 등 배달비용은 더 많이 들 수밖에 없을 테니, 지국으로서도 현실적으로 소화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그렇게 해서 신문을 구독하지 못하는 독자들이 전국적으로 수십만명이야 되겠는가. 하지만 ‘독자의 선택권’을 감안하면 부수야 얼마가 되건 이런 일은 개선돼야 할 것이다. 공동배달제의 취지 가운데 하나도 현실 여건 때문에 독자의 선택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를 줄여보자는 데 있다고 이해한다. 적어도 보고 싶은 신문은 보게 만들자는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3월 1일 이사를 갔는데 하루하루 문 앞에 쌓여 가는 신문이 하나 있다. 이른바 ‘메이저 신문’ 중 하나다. “전에 구독하던 사람은 이사 갔고, 새로 온 사람인데 구독할 생각이 없다”고 전화해도 여전하다. 조금 보고 나서 치워버리면 치사한 것 같아 아예 보지도 않고 쌓아놓고 있다. 독자의 선택권이 무시되고 있는 셈이다.

‘강제투입’ 여부를 떠나, 좋게 생각해서 ‘홍보용 무가지’라고 한다 치자. 어느 신문은 독자가 보고 싶어도 배달을 할 수가 없고, 어느 신문은 두달째 ‘홍보용 신문’을 들이밀고 있다.

이런 게 시장경쟁의 결과라면 한 신문사 사설에서 언급했듯 “공익성을 담보로 한 사기업”에서 발행하는 상품의 엇갈린 행보가 너무 씁쓸하다. 하루하루 문 앞에 쌓여가는 신문더미에서 공익성을 찾아내기보다는 사기업적 경쟁의 결과만을 재확인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정부의 시장개입 논란 속에서 지면 여기저기에 등장하는 독자의 선택권을 다시 생각한다. 독자의 선택권은 존중되고, 다른 한편 보장돼야 할 것이다.

김상철 기자 ksoul@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