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10년만에 다시 경험하는 미국의 매체환경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나를 놀라게 한다. 하나는 뉴스 매체, 특히 텔레비전 매체의 폭발이다. 과거 CBS NBC ABC의 3대 네트워크와 케이블 뉴스사인 CNN이 전부이던 방송뉴스 시장은 어느새 FOX 뉴스와 CNBC MSNBC 등 하루 종일 뉴스만을 방송하는 채널들이 새로 등장해 가히 뉴스의 홍수 시대를 열었다. 여기에 정치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C-SPAN 두 채널과 지역 소식을 전하는 퍼블릭 채널들까지 더하면 TV 시청자는 넘치는 뉴스 프로그램을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감당하기가 어려운 지경이다.
이렇다보니 월터 크롱카이트 시절 20%를 웃돌던 각 네트워크 뉴스의 시청률은 이제 10%를 넘기면 성공작이다. 각 방송사들은 당연히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짜낸다. 가장 쉽게 해볼 수 있는 일은 인기 앵커와 기자를 스카웃하는 작업이다. 이미 카니 정과 포레스트 소여 등이 자리를 옮겼고 스타 앵커, 유명 기자의 몸값은 치솟을 대로 솟았다.
광고 수입은 늘지 않는데 이들에 대한 비용은 무엇으로 충당하는가. 결국 미국 방송사의 해법은 다른 제작 비용의 삭감이다. 해외지국과 특파원이 과거에 비해 크게 줄었고, 심층 보도물도 현저하게 감소했다. 역설적이지만 뉴스 TV는 느는데 뉴스의 질은 떨어지는 형국이다. 게다가 스타가 아닌 뉴스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감원의 압박은 더욱 가혹하다.
이는 무엇이 바람직한 뉴스인가를 생각할 때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은 또 상당히 축소된 형태지만 한국 방송계에서도 관찰되고 있어 우리 현실에서도 심각하게 고려해야할 과제로 다가온다.
이러한 산업적 환경의 변화보다 더욱 시선을 잡은 현상은 케이블 뉴스의 새로운 강자로 군림한 FOX 채널이 뉴스를 보도하는 방식이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FOX 뉴스는 세계적인 언론재벌인 루퍼드 머독이 소유한 회사다. 처음 시작할 때 이 방송은 CNN과는 경쟁이 되지 않는 상태였다. 그러나 2002년을 기점으로 CNN을 누르며 케이블 뉴스를 주도하는 위치에 섰다. FOX의 성공비결은 좋게 말하면 ‘관점이 있는 뉴스’를 보도하는 것이고, 다르게 말하면 모든 사안을 보수적, 우파적 관점에서 해석해 전하는 것이다. FOX의 이러한 편집정책은 이번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났다. FOX는 스튜디오의 디자인부터철저하게 애국적 분위기가 묻어나도록 했으며 보도의 기조는 한국적 문맥에서 보면 거의 국군의 방송에 흡사한 고정 틀을 유지했다.
다른 많은 매체들이 전쟁의 객관적 실체를 어떻게 전해야 하는가를 조금이라도 고민하려 했다면 FOX의 경우는 전혀 그런 내색조차 않았다는 얘기다. 미국에서 강의하는 한 한국인 교수는 자신이 이러한 뉴스 채널이 있는 나라에 산다는 사실 자체가 싫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시장에서는 이러한 저널리즘이 힘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FOX 뉴스의 문제를 얘기하는 이유는 우리사회에 더 폭넓게 존재하는 FOX 뉴스류의 언론행위를 경계하기 위함이다. 언제부턴가 한국의 저널리즘은 신문과 방송을 막론하고 FOX 류의 ‘관점을 가진 매체’가 주류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사회의 갈등이 증폭되며 시민사회가 언론사에게 정파적 입장표명을 요구한 측면도 있고, 언론이 상업적 또는 정치적 전략으로 당파성을 스스로 표방한 측면도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러는 사이 저널리즘의 정도는 실종되고 각 매체 앞에는 ‘개혁파’거나 ‘보수파’의 푯말이 내걸렸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한국 언론은 모두가 FOX 뉴스가 돼 버렸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말하면 뉴스는 희소해지고 주장만 남게 된 형국이다. 이것이 미래형 저널리즘의 모습인가? 기자는 결국 이념투쟁의 전위여야 하는가? 아무래도 FOX는 하나면 족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