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동지 여러분’으로 시작된 지난 28일 정연주 사장의 취임사는 “KBS 사장의 제왕적 권력, 회사 지도부에 집중돼 있는 독점적 의사 결정 구조, 경직화된 관료주의 조직의 폐쇄성을 과감하게 혁파하겠다”는 것으로 집약됐다. 내부의 경직된 권력구조를 바꾸는 것에서부터 KBS 개혁을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정 사장은 지난 29일 첫 기자간담회(사진)에서도 “젊고 활력있는 조직 문화와 시스템을 통해 직원들의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와 관련 정 사장은 “KBS와 MBC의 토론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KBS는 일에 대한 열정이나 제작 준비 과정이 관료적이고 느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조직과 시스템에 활력과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공영방송의 올바른 위상과 역할에 대해서도 “시청률 경쟁과 상업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공익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 문화와 풍토를 바꾸는데 KBS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실천 과제에 대해서도 다면평가 도입을 통한 인사제도 정비, 인사청탁 근절, 감사실 기능 강화, 공익 프로그램 강화, 노조와의 건강한 긴장·협력 관계 구축 등을 강조함으로써 KBS 운영에 일대 변화가 일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내용은 일선 기자와 PD들 사이에서도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던 사안이라는 점에서 보다 실질적인 개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정 사장은 또 기자간담회에서 “보도국의 편집권은 엄격하게 독립돼야 한다”고 강조해 편성규약 개정, 보도국장 추천제, 평기자들이 참여하는 편집위원회 구성 등도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높아지고 있다. 보도국 한 기자는 “젊은 KBS, 기수 파괴 및 능력 우선 인사 등은 파격적이면서도 올바른 개혁 방향”이라며 “힘있는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일선 기자와 PD, 노조를 중심으로 다양한 개혁 과제가 제시될 전망이다. KBS 보도국 기자들은 신임 사장 취임에 대비해 자체 여론조사 등을 벌여 ‘보도본부 개선안’을 마련한 상태다. 개선안에는 △보도국장 복수 추천제 △주말뉴스 축소 △인사고과 반영 다면평가제 실시△일 중심 조직문화 조성 등을 담고 있다. 개선안 작업에 참여한 한 기자는 “사장의 취임사 내용이 일선 기자들이 마련한 개혁안보다 더 파격적인 것 같다”며 “사외 여론조사 결과 과반수 이상이 KBS 보도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한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내용 등을 사장에게 전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KBS 노조(위원장 김영삼)도 10대 개혁과제를 마련해 사장에게 제시할 방침이다. 10대 과제에는 △인적 청산 △본부장 추천제 △다면평가제·전문직제·팀제 등 인사제도 개혁 △2TV 정체성 확립 △매체비평 및 개혁 프로그램 신설 △평기자들이 참석하는 편집위원회 구성 등 공정방송 장치 내실화 △편성규약 개정 △지역방송 활성화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정연주 사장은 30일 정기 이사회에 부사장 임명동의안을 제출, 부사장 인선이 끝나는 대로 본부장, 실국장을 비롯한 간부급 인사를 단행할 예정이다. KBS의 주요 개혁과제로 과감한 인적 쇄신과 발탁 인사가 요구되고 있고, 정 사장도 취임사에서 강력한 의지를 천명한 만큼 KBS 개혁의 바로미터가 될 첫 인사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