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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다시보기]고건 총리가 궁금하다

방현석 소설가  2003.05.07 13:4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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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주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인사정책으로 보인다. 입장에 따라서 평가가 다르겠지만 나는 노무현 정권이 남기게 될 최고의 업적은 인사정책이 될 것이라고 본다.

그동안 민주화의 진전과 정권교체에 따라 국정 참여자들이 조금씩 변화해왔지만 지금처럼 전면적이지는 못했다. 정권의 정치적 진보성의 정도가 인사정책의 진보성과 일치하는 것도 아니었다. 역대 정권 중에서 정치와 외교정책에 있어서 가장 전향적이고 일관된 입장을 견지한 김대중 정권의 인사정책이 김영삼 정권의 인사정책보다 진보적인 것은 아니었다. 특히 하나회의 청산은 김영삼 정권이 남긴 의미있는 업적 중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하나회의 청산이 없었다면 김대중 정권의 탄생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김영삼 정권의 인사정책의 목표가 김대중 정권의 탄생에 있지 않았지만 결과는 그렇게 되었다. 노무현 정권의 인사정책 역시 그 의도와 상관없이 다음 정권의 수준과 역사적 단계를 규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지금 수구냉전 세력들이 노무현 정권의 인사정책에 대해 울화를 삭히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늘의 인사정책은 내일의 인적 인프라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의 인사정책이 지닌 특징은 기존의 인사기준에 대한 전면적인 파기에 있다. 과거에는 어땠는가. 학력과 경력이 인사대상의 범주를 설정하는 최대의 기준이었으며, 그렇게 설정된 범주에 든 이른바 엘리트들은 ‘경륜’이란 뺏지를 달고 사회의 특권층을 형성했다. 그동안 학력과 경력을 바탕으로 경륜이라는 피라미드를 쌓는데 골몰해온 우리사회의 특권층에게 노무현 정권의 인사정책은 가치관의 혼란을 불러일으킬 만 한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노무현 정권의 인사정책에 대한 수구냉전세력들의 불만과 분노에 국민들이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민들은 더 이상 특권세력들이 밀어주고 끌어주며 쌓아놓은 그들만의 ‘리그’전을 보아줄 수 있을 만큼 순진하지 않다. 한나라당과 일부언론들은 국민들이 아직도 특권세력들의 성안에 입성한 엘리트들이 누구의 이익에 봉사하는 지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자질과 색깔공세를 전개하고 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우리 사회에서 가장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분야 중의 하나는 영화였다. 방화의 관람을 수치로 여기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이었다. 무엇이 상황을 바꾸었는가.이창동 감독은 소설가 출신이었지만 영화계는 어떤 장벽도 쌓지 않고 그를 받아들였으며, 그가 지닌 인문학적 소양을 한국 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소중한 자산으로 활용했다.

불균형과 우여곡절, 시간이 걸리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수준에 못 미치는 영화와 극장이 도태되듯이 국민의 수준에 터무니없이 못 미치는 정치와 언론 역시 도태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이를 믿는 듯 싶다. 국회 다수당과 일부언론의 맹렬한 반대를 무시하고 국가정보원장과 기조실장 임명을 강행했다. 우려와 달리 국민들은 무덤덤하다.

오히려 정말 우려스러운 것은 고건 국무총리와 노무현 대통령의 관계이다. 온갖 현안과 궂은 일에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고 총리는 보이지 않는다. 개혁 대통령에 안정총리, 이것이 현 정권의 기본구상이라고는 하지만 총리가 대통령 같고 대통령이 총리 같아서는 곤란하다. 노무현 정권 인사정책의 아킬레스건은 여기에 있으며 훗날 이로 인해서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할 것만 같은 예감은 기우일까.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나는 인사정책을 포함한 노무현 정권의 정책을 확고히 지지하고 뒷받침하는 고건 총리의 발언을 들은 적이 없다. 그는 역대정권을 거치면서 가장 성공적인 엘리트코스를 밟아온 사람이다. 언론이 고영구 국정원장의 임명을 둘러싼 논란을 대문짝만하게 다룰 때도 나의 궁금증은 고건 총리의 지금 견해가 무엇일까, 그리고 그는 나중에 이 과정을 무엇이라고 설명하게 될까,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