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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왜 지방분권이냐"

기자칼럼  2003.05.07 13: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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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기 강원민방 보도국 차장



“왜 지방분권이냐?”

서울에서 살다가 훌훌 털고 시골로 내려온 내게 서울의 지인들이 이런 질문을 던진다. 물론 함께 언론밥을 나눠먹던 사이들이다. ‘니가 서울에 있을 때는 그렇지 않더니 지금 지방에 있기 때문에 분권을 운운하는 것 아니냐’는 배알 꼴린 핀잔이다.

그럴 수도 있다. 시골에서 공부깨나 했답시고 보따리 싸들고 서울로 올라간 촌놈에게 서울은 성공과 야망의 비릿한 냄새로 뒤엉킨 중앙이자 중심이었다. 누구나 가능성을 열어두지만 모두에게 성취감을 주지 않는 비정하고 야박한 도시.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들의 도전이 끝없이 이어지면서 핵융합하듯 자꾸 커져만가는 도시.

그곳이 받아들일 줄만 알았지 결코 되돌려주지는 못하는 폐쇄와 단절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꽤 오랜 세월이 걸렸다. 숨막히는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리면서 생각한 게 있다면 제발 하루라도 빨리 이 아수라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을까 하는 것이었다. 화려한 출세와 영광은 바지춤 어딘가에 대충 구겨넣고 나와 내 가족의 삶과 영혼이 맑게 숨쉴 수 있는 세상으로의 탈출은 그렇게 이뤄졌다.

그래서 지방분권인가? 내가 중앙을 벗어났기 때문에?

몸뚱이가 공룡 뱃속같은 서울을 벗어났다고 해서 지방분권은 아니다. 서울에 두고 온 꿈과 이루지 못한 야망을 추억처럼 파먹고 사는 한 나는 영원히 중앙집중론자다. 내가 터잡은 시골에서 이뤄야 할 꿈과 희망이 있고, 펼쳐야 할 야망과 비전이 있다면 그게 지방분권이라고 본다. 비록 파이가 적으면 어떤가. 차라리 서울에서 안타깝게 잃어버릴 소중한 것들을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새 정부 들어서 활발하던 지방분권 얘기가 벌써 한풀 수그러든 느낌이다. 지방분권의 과실에만 열중하는 풀뿌리 의원들의 태도도 도무지 마뜩찮다. 서울에 있는 신문·방송사에 다니는 동료 선후배 기자들이 지방에 있는 나같은 시골 기자에게 “왜 지방분권이냐”고 못마땅해할 땐 정말 맥이 풀린다.

중앙집중이 가져다준 달콤한 열매를 따먹는데 탐닉해온 중앙집중형 언론사의 타성과 관행을 우리 기자들마저 고민없이 되풀이하려 한다.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