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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위원장' 놓고 정치판 구태 답습

방송위 파행출범 안팎

서정은 기자  2003.05.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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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위 앞날 ‘먹구름’…방송정책 공백 불가피 할 듯



2기 방송위원회의 파행 사태는 어느정도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것이 언론계의 반응이다. 정치권 나눠먹기로 출범한 방송위원회는 시작부터 부위원장 몫을 놓고 정치판을 그대로 답습하는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한나라당 추천위원 3명의 대표성 문제와 일부 방송위원의 자격 시비도 점차 확산되고 있어 방송정책과 개혁을 독립적으로 수행해나가야 할 방송위원회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왜 부적격인가=우선 한나라당이 추천한 3명의 방송위원인 양휘부(KBS)·박준영(SBS)·윤종보(MBC)씨는 모두 지상파 방송 3사 출신이라는 점에서 기본적인 각계 대표성, 전문성 등의 원칙조차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각종 사업자들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정책을 수립해야 할 책무가 있는 방송위원을 모두 방송 3사 출신 인사로 배정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언론노조는 “한나라당 추천위원 3명을 인정할 수 없다”며 임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개별 경력에서도 양휘부 위원은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의 언론특보를 지낸 경력 때문에 방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양 위원은 또 지난해 한나라당이 방송사에 보내 파문을 낳았던 이른바 ‘신보도지침’과 관련, 지침을 주도한 장본인 중 한명으로 지목돼 왔다는 점에서 방송의 독립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중론이다. 무엇보다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특보를 지낸 경력 때문에 KBS 사장에서 낙마한 서동구씨에 대해 정치적 중립성 문제를 거론하며 공세를 취했던 한나라당이 동일한 경력의 양 위원을 방송위원으로 추천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SBS 전무 출신의 박준영 위원의 경우, 지난 97년부터 1년여간 대구방송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이사회 의결없이 60억원을 은행에서 대출받아 당시 대구방송 대주주였던 청구에 불법 대여한 사실이 드러나 도덕성 논란이 일고 있다. 청구는 97년 말 부도가 났고 IMF와 맞물려 대구방송은 60억원 이상의 손실과 구조조정 등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이와 관련 대구방송 한 관계자는 “뒤늦게 사실을 알게된 주주들이 SBS 상무로 자리를 옮긴 박준영씨를 고발하려고 했으나 대주주인 청구가 망한 상태에서 실질적으로 돈을 돌려받기 힘들다고 판단해 접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어쨌든 명백한 불법행위였고대구방송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고 말했다.

노성대 방송위원장과 이효성 부위원장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방송위 노조는 “노 위원장은 무기력한 조직운영으로 MBC 사장에서 불명예 퇴진한 경력이 있고, 이 부위원장은 방송위의 정부 행정기구화를 주장해온 학자”라며 출근 저지투쟁을 벌이고 있다.

△정치권 이전투구 재연 우려=2기 방송위원회가 부위원장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벌이면서 방송위원회의 정치적 독립성 훼손에 대한 우려가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부위원장을 차지하려는 정치권 다툼에서 보여지듯 앞으로 산적한 방송정책과 방송계 인선에서도 여야 정쟁이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게다가 여야가 합의해 개정한 방송법에 따르면 2기 방송위원회는 비상임위원(4명)보다 상임위원(5명)이 더 많은 구조를 갖고 있어 방송위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 자칫 정치권 이해관계의 대리전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2기 방송위원회는 이달 안으로 임기가 만료되는 KBS 이사회와 방문진 이사회를 구성하고 EBS 사장을 임명해야 한다. 그러나 국회 축소판을 연상케 하는 현재와 같은 방송위원회 구도에서 방송계 주요 인선 역시 여야 자리 나눠먹기 싸움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방송통신위원회 설립, 디지털TV 전송방식, 지상파 위성 재송신, 방송시간 연장, 지상파 DMB 등 방송계 주요 현안이 산적해 있어 방송위가 하루빨리 제자리를 잡지 않는다면 당분간 방송정책의 공백 상태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서정은 기자 punda@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