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이 없어지면서 부원들끼리 모여 조촐한 회식을 한 자리가 마지막이 될 줄은 누구도 몰랐다.
허무한 게 인생이라고들 하지만 이렇게 끝날 줄은 진짜 몰랐다. 아직도 할 얘기가 많고 아직도 함께 고민할 시간이 많은데 이렇게 끝나버리다니. 다음날 북한산으로 산악훈련을 떠나는 너는 다소 긴장된 모습으로 우리와 약속했다.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너의 얘기를 하기로. 그런 너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동환아 뭐하냐’ 하며 어깨를 툭 치던 너의 모습이 자꾸만 밟힌다.
2년 가까이 사회부에서 한솥밥을 먹다 인사 발령난 곳이 보도제작국. 동기 둘이 열심히 해보자고 다짐했었다. 짧은 뉴스에서 다뤄보지 못한 기획 프로그램을 한번 만들어 보자며 우린 열심히 했다.
아이템 회의 때마다 너는 의욕적으로 아이디어를 냈고 채택이 안될 때는 서로 고민을 털어놓으며 격려를 했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끝났다.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 돼 버렸다.
명근아. 너의 사고 소식을 접한 날 멍한 상태로 제작국으로 혼자 올라갔었다. 주인을 잃어버린 책상과 의자를 보니 눈물이 나더라. 같이 숨쉬고 얘기하며 웃음을 나누던 그 곳이 왜 그리 생소하게 느껴지던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아마 두 달전인가…. 방송을 마치고 부원들끼리 식사를 하면서 회사에서 밀레니엄 기획으로 히말라야 생방송을 기획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너는 대단한 관심을 보였었다. 그리고 다음날 당장 밀레니엄 기획단에 참여 신청을 했어. 왜 우리가 그때 그런 자리를 가졌는지 난 자꾸 후회스럽다. 애초부터 그런 자리를 만들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거고 나도 죽기보다 싫은 이런 글을 쓰지 않아도 될텐데.
신청을 하고 나서 너는 내게 집사람이 반대를 한다며 걱정스럽게 얘기했었다. 만삭인 아내를 홀로 놔두고 가야 하는 일인 만큼 부담이 됐겠지만 좀 더 큰 일을 해보자며 가기를 원하는 너를 차마 잡질 못했다. 네가 은주 씨 곁에 있어줘야 한다고 얘기하지 못했다. 바보같이.
명근아, 네가 사고를 당한 날 동기들과 너의 집을 갔었다. 이사하고 집들이를 하지 않은 너의 집을 결국 그런 식으로 가게 되더구나. 너무 씁쓸하더라.
명근아, 뒤에 남은 사람들은 걱정하지 말고 이제 편히 눈을 감거라. 이것이우리들과너와의 인연의 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너의 든든한 동기들과 너를 자랑스러워하는 선후배들이 버티고 서서 너와의 새로운 인연의 끈인 너의 가족, 그리고 곧 태어날 너의 분신과 끝까지 함께 하련다.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고통이 없는 저 세상에서 지켜봐 주렴. 명근아, 보고 싶은 친구야. 편히 쉬거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