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위원 선임 과정 및 최근 펴낸 ‘부정선거백서’에서 드러난 한나라당의 ‘방송관’이 심각하게 왜곡돼 있다는 언론계와 시민단체의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이 이회창 전 총재의 언론특보를 지낸 양휘부씨를 방송위원으로 추천하면서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정면으로 부정했다는 언론계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부위원장과 상임위원 문제를 둘러싸고 방송위원회가 정치판 논리에 휘둘리고 있다는 점에서 방송위원을 나눠먹기 식으로 구성한 여야 모두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나 전문성과 각 분야 대표성, 정치적 독립성 등을 고려해 제대로 방송위원을 추천해야 할 정당이 양휘부씨를 추천한 것은 최소한의 책임마저 저버렸다는 지적이다.
한국언론정보학회는 이와 관련 지난 15일 성명을 내고 “한나라당이 양휘부씨를 상임위원으로 추천한 것은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부정하는 폭거이자 방송장악의 야욕을 드러낸 것”이라며 “한나라당이 방송위 부위원장과 상임위원 호선 과정에서 보여준 행태 역시 방송을 장악하려는 시도가 아닌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도 지난 17일 성명에서 “한나라당은 양휘부씨를 방송위원으로 추천해 정치적 독립성을 훼손했다”며 “방송위 구성 몫으로 논란을 벌이고 부위원장을 달라고 억지주장을 펴는 등 방송위 파행의 일차적 책임은 한나라당에 있다”고 밝혔다.
걸핏하면 방송법 개정을 ‘카드’로 내세우고 있는 것도 방송에 대한 한나라당의 기본 시각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여야가 2기 방송위원회의 자당 몫을 확보하려고 기선싸움을 벌인 끝에 한나라당이 주도한 방송법 개정안이 국민적 여론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통과됐다. 시민·언론단체들이 방송법의 미비함을 지적하며 총체적인 개정 필요성을 제기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이같은 목소리는 외면한 채 방송위원 추천 비율과 안배에만 골몰한 결과였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자당이 추천한 양휘부씨가 부위원장으로 호선되지 않자 “대통령 몫 3인을 1인으로 줄이는 방송법 개정안을 6월중 처리하겠다”며 또다시 방송법 개정을 거론하고 나섰다. 언론노조는 이와 관련 지난 14일 성명에서 “다수당이라는 수적 우세를 앞세운 폭력”이라며 “자가당착적인 방송관을 방송제도와방송정책 전반에 투영시키려는 정치적 행보를 당장 청산하라”고 촉구했다.
한나라당이 지난 12일 발표한 ‘16대 대선부정선거 백서’에서 부정선거의 주요 행태로 ‘방송사의 편파보도’를 지목한 것도 해당 방송사와 언론노조, 학계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한나라당은 백서에서 방송의 편파보로 사례로 △노·정 단일화 보도 △정몽준 지지철회 보도 등을 지목하면서 방송사의 정치적 중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권혁남 전북대 신방과 교수는 “시민사회단체와 언론학자들은 16대 대선보도와 관련 MBC와 KBS가 철저하게 기계적 중립성에 빠졌다고 분석하고 있다”며 “방송 때문에 대선에서 패배했다는 주장은 근거도 타당성도 없는 정치적 트집잡기에 불과하다. 한나라당의 방송위원 추천이나 방송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발상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언론노조와 KBS·MBC 본부도 각각 성명을 내고 “한나라당의 방송관이 심각하게 왜곡돼 있다”며 “방송을 장악하려는 헛된 꿈을 버리지 않을 경우 언론계의 총력투쟁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