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 방송위원들 대다수는 정치권 나눠먹기식 인선 방식으로 인한 정치권 세력다툼이 지금의 방송위 파행 사태를 불러온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위원들은 정치권이 추천하는 현재의 방식에는 개선 여지가 있지만 현행 제도하에서는 위원들 개개인의 처신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특정 방송위원들이 정당 대리인을 자임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2기 방송위원회의 정책 과제에 대해서는 방송통신 융합에 대처할 방송통신위원회 구성이 1순위로 꼽혔다. 당면한 현안으로는 임기가 만료된 KBS 이사회, 방문진 이사회, EBS 사장 등의 방송사 인선이라고 답했다.
노성대 위원장을 제외한 7명의 방송위원들이 지난 15∼17일 개별 인터뷰에 응했다. 이효성 부위원장은 방송위원회 정책 과제에 대해서만 인터뷰에 응했고 민병준 위원은 개인 일정상 인터뷰가 어렵다고 알려왔다.
△방송위 파행 원인 및 정치적 독립성 논란=성유보 상임위원은 “처음 방송법을 만들 때도 이런 사태를 우려해 국회가 추천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며 “방송위원회를 숫자로 안배하는 방식이 이번 사태를 불렀다. 국회가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려는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유숙렬 위원은 “당 추천 인사들이 집단행동을 하는 등 정치판을 축소시켜 놓은 것처럼 ‘정치적’인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윤종보 위원은 “추천해준 단체나 기관을 방송위원들이 의식하는 것 같다”며 “국회 축소판이라는 지적이 있는 것도 사실인데, 방송위원들을 추천한 기관은 정당과 정부지만 방송위원들이 결별해야 한다. 아직까지는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준영 상임위원은 “국회 축소판, 정치적 중립성 훼손이라는 지적은 방송위원들이 극복하고 뛰어넘어야 할 문제”라며 “정치적이라는 것을 전적으로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것 때문에 본말이 전도돼선 안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휘부 상임위원은 “이번 사태의 원인에 대해 추천과 구성방식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데 이것은 정파이익이 반영됐다는 판단에서 나오는 게 아니냐”며 “그러나 현행 제도는 방송위 구성과 위원 추천에 정치권이 관여하도록 돼 있다. 그렇다면 현재 틀에서 정치세력간 균형을 어떻게 맞추느냐 보다 다양한 의견들이 어떻게반영될 수 있는지에 개선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용환 위원은 “일부 방송위원들이 법 정신을 잃고 특정 정당 대리인을 자임하고 있다. 정당 대리인 입장에서 다른 방송위원들의 의사 결정을 요구하고,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보이는 방송위원에 대해 다른 정치집단의 대리인이라고 한다”고 지적했다. 조 위원은 “일부 언론이 이를 묵시적인지 명시적인지 동조하고 있다”며 “방송위원이 당연히 특정 정당의 대리인으로 활동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기사를 쓰면 정말 독립적으로 활동하려는 방송위원들은 설 땅이 없다. 정치적 목적을 갖고 있는 방송위원과 정당을 도와주는 꼴”이라고 말했다.
△2기 방송위 파행 해법=성유보 상임위원은 “방송위원들이 정치권 이해관계에 따라 구성이 됐지만 앞으로 개인적인 가치판단으로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준영 상임위원은 “모든 방송위원들이 잡념없이 흰 도화지를 받은 초심으로 잘하면 풀릴 수 있을 것”이라며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휘부 상임위원은 “노조의 출근 저지는 일단 위원장이 슬기롭게 풀어야 한다”며 “제도적 개선에 대한 검토 여부를 떠나 일단 현행 제도를 통해 선임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출근 저지보다는 능력있고 적합한지 여부를 지켜보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종보 위원은 “방송위 노조나 우리 방송위원들이나 결국 한국방송의 발전을 위해 방송위가 제대로 잘 해야 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수레는 항상 두 바퀴로 굴러가는 것이다. 노조와 대화를 통해 잘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적격 논란에 대한 입장=대구방송 사장 재직 시절 배임죄로 벌금형을 받은 전력 때문에 도덕성 논란이 일고 있는 박준영 상임위원은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공직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겠냐”며 “내가 대구방송 사장으로 가기 전부터 대주주인 청구가 돈을 빌려쓰고 있었다. 주총에서도 이미 보고된 사항이었다. 나중에 청구가 갚지 못한 60억원 때문에 내가 불구속 기소됐지만 그 돈은 사장 결재 없이 담당 간부의 사인으로 이뤄진 행위였기 때문에 나는 일부 책임만을 물어 벌금형으로 끝났다”고 해명했다.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의 언론특보 경력으로 정치적 중립성 훼손 우려에 대한 지적을 받고 있는 양휘부 상임위원은 “독립성을 우려한다면 먼저 정치적중립이 무엇이고 누구로부터의 독립인지 확실히 해야 한다”며 “나는 당원도 아니고, 정부로부터의 독립을 이야기할 때의 그 정치권력과도 전혀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양 위원은 지난 대선 당시 방송사에 보낸 ‘신보도지침’에 대해서도 “방송이 편파보도를 하니까 공정하게 해달라고 당에서 협조공문을 보낸 것”이라며 “이것을 언론탄압으로 보는 것 역시 정치공세다. 야당이 언론을 탄압할 수단이 있나. 왜 사실과 다른 왜곡된 공세를 펼치는가”라고 반문했다.
△2기 방송위 정책과제와 현안=이효성 부위원장은 “KBS 이사진, 방문진 이사회, EBS 사장 등 방송사 인사가 가장 큰 현안”이라며 “정책적 차원에서는 방송통신위원회로 전환하기 위한 면밀한 연구와 해당 부처간 협조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부위원장은 “DTV 전환에 따른 정책문제, 스카이라이프 역외재송신, DMB 사업자 허가 등도 현안”이라며 “장기적 과제로는 지상파 방송사의 독과점 완화문제, 방송산업 육성 문제, 외국방송 시장 개방 문제 등이 산적해 있다”고 덧붙였다.
박준영 상임위원은 “방송통신 융합과 기술발전, 방송개방, 시청층 변화 등이 큰 변화의 흐름”이라며 “방송의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일, 케이블 지상파 위성 모바일 등 혼재된 이해관계를 현명하게 조정하는 일, 방송위원들과 방송위 직원들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성유보 상임위원은 “무엇보다 정치권이나 방송의 이해관계에 휩싸이지 말고 소신껏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2기 방송위의 장기적 과제는 방송통신 융합 시대를 맞아 개편될 방송통신위원회가 지금보다 더 독립적으로 위상을 확보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성 위원은 “현재 당면한 과제는 방송사 이사진 구성문제이고 정책적으로는 DTV 전송방식, 지역방송 활성화, 위성 케이블 지상파 등을 특성화하면서 균형발전 시키는 일 등이 산더미 같다. 졸속보다 충분한 토론을 통해 최대한 국민 여론과 의사를 수렴해야 한다”고 밝혔다.
양휘부 상임위원은 “DTV 전송방식이나 방송통신 융합에 대한 대처방안 등 중요 과제가 많다”며 “법적 제도적 정비가 필요한 사안들이기 때문에 본격적인 토론과 논란이 더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숙렬 위원은 “각종 정책 결정권에 여성 몫 30%를 확보해내고, 프로그램에 여성의 목소리를 반영하며 성차별적인 요소를 규제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방송위는 방송개혁과 언론개혁의 큰 틀이기 때문에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방송정책을 이끄는 위원회가 높은 도덕성을 확보해 국민들의 신뢰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용환 위원은 “구체적인 현안은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른다. 개인적으로 배워가면서 법적 조언이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게 역할이 아닌가 싶다”며 “특정 정치세력의 눈치를 보면서 마구잡이 타협을 하면 국민에 대해 어떻게 원칙을 갖고 법 집행을 할 수 있겠나. 정치적 독립성을 지키고 법을 지키는 선에서 일을 하지 않으면 신뢰받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