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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주장] 언론의 오보와 윤리

우리의 주장  2003.05.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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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1자 대 7500단어’

한글과 영어의 차이는 아니었다.

우리는 뉴욕 타임스 인터넷 판이 지난 10일 토로한 고백의 형식과 과정이 어떤 형태로든 연합뉴스에 귀감이 되기를 바랐다. 단지 긴 문장을 보고 배우라는 주문만은 아니다. 뉴욕 타임스의 고백에는 진실을 바로잡기 위한 기나긴 고통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 고백을 돌아보자.

이 신문은 제이슨 블레어(27) 기자가 지난해 10월부터 이달초 퇴사하기 전까지 작성한 36건의 기사에서 다른 신문 기사를 도용하거나 취재원 멘트를 조작하는 한편, 취재 현장에서 기사를 작성한 것처럼 꾸민 잘못을 저질렀다고 고백했다. 블레어의 잘못을 확인하기 위해 기자 5명과 조사원 2명, 부장 3명이 동원됐고 150번의 인터뷰를 거쳐야 했던 점은 우리 언론에게 신랄한 타산지석이 되어야 마땅했다.

이것만이 아니었다. 신문은 블레어 기자가 지난 1999년 입사한 이후 지난해 10월까지 작성한 600건의 기사를 현미경 들여다보듯 하겠다고 밝혔다. 또 직원 20명과 외부 인사 2명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이 같은 지면 조작을 지적해내지 못한 취재 시스템 전반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여기에 견줘 19일 연합뉴스 민족뉴스취재본부장 이름으로 밝힌 ‘사고’는 고백에도 미치지 못하고 자성에도 한참 모자라다. ‘사실을 단정해 보도하지는 않았지만’이라고 미리 숨을 구멍을 찾고 있다. ‘평소 신뢰를 쌓아온 취재원’이라고, ‘북한 관련 정부 부처의 확인과정을 거쳤지만 결과적으로 철저하게 사실 확인을 하지 못한 것은 부끄럽다’고 책임을 돌리는 듯한 태도마저 비쳤다. 하지만 탈북자 출신 전문기자의 기사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시스템 상의 문제에 대해선 눈을 감았다.

특히 이번 파문은 지난달 30일 국회를 통과한 ‘뉴스통신 진흥에 관한 법률’과 겹쳐보일 수밖에 없다. 통신 보도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시점에 터져 연합뉴스로서는 뼈아플 것이다. 우리는 연합뉴스가 북한 및 통일 보도의 비중을 중시해 취재본부를 가동하는 등 다른 언론사의 모범이 될만한 노력을 해온 점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이런 투자가 먼훗날 밀알이 되기 위해서도, 연합뉴스가 기간 통신 운운할 명분에 걸맞게 진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20일자 신문 1면에 파격적으로 정정 사고를 낸 경향신문도 ‘대북관계 보도는 정보 및 취재원의 확인과정에 한계가 있는 것은 주지의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잘못했으니 죄송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북한 사정에 대해 신뢰성을 인정받는 전문 기자가 쓴 보도’라고 핑계거리를 찾고 ‘정부측이 확실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 것도 혼란을 부추겼다’고 남의 탓을 한 대한매일 역시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확인 안된 것은 쓰지 말라’는 취재 제1조에 덧붙여 우리 언론은 오보가 바로잡히지 않은 채 ‘돌출’되는 조직적 문제나 원인에 대해 메스를 대야 한다. “윤리규정의 첫번째는 실수를 하면 가능한 한 모든 실수를 찾아본 다음에 가능한 한 빨리 그 실수를 고백하는 것”이라는 스티븐 로버츠 조지 워싱턴대 교수의 말을 새겨야 한다.

우리 언론이 이번과 비슷한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았는지 뉴욕 타임스의 10분의 1의 노력이라도 기울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