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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5·18 기념식과 '48분간의 침묵'

고영호 기자  2003.05.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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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호 CBS전남방송 보도국 기자



5·18 민주화운동기념식장 주변에서의 한총련 시위로 노무현 대통령의 참석이 늦어지면서 국가 기념 행사가 20분이나 늦게 시작됐던 초유의 사태로 후유증이 적지 않다.

그날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합동중계 주관사를 맡았던 KBS는 정작 기념식이 시작돼야 할 오전 11시부터 대통령이 기념식장 뒷문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11시 18분까지 왜 기념식이 늦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어떤 멘트도 내보내지 않았다.

다만 진행을 맡은 아나운서는 수 차례에 걸쳐 “잠시 후 대통령 내외분이 입장하겠습니다” 또는 “이제 잠시 후 기념식이 열리겠습니다”만 반복하고 있었다. 중계 카메라의 앵글은 여전히 행사장에 참석한 내빈과 시민들, 그리고 5·18 묘지에만 맞춰져 있었을 따름이었다.

참으로 지리한 화면을 지켜보면서, “아무리 대통령이라고 국가 기념행사를 이렇게 지각할 수 있나”하는 엉뚱한 오해에서부터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가”하며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결국 노 대통령은 예정된 시간인 오전 11시 정각을 넘겨 11시 18분쯤 카메라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통령의 연설이 시작된 11시 42분까지도 기념식이 늦은 이유에 대해 어떤 부가 설명이 없었다.

전체 중계방송 시간인 49분 47초 중, 끝 무렵인 49분이 돼서야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대통령이 탄 차량을 막아서 늦어졌다”는 아나운서의 해명 멘트가 나왔다.

진행 아나운서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대통령 연설 도중에야 중계 카메라가 ‘인터 컴’으로 대통령이 늦은 이유를 전해왔다”며 “인터 컴 이외에 메모를 주고받아 의사를 전달하는 것은 경호원들의 표적이 되기 때문에 방송 도중일지라도 대통령이 늦은 이유를 다른 방법으로 전달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5·18 기념식 사태’ 이후 언론들은 한총련의 과격성과 경찰의 경비책임만 따졌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방송사의 ‘책무’ 불이행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기념식장에는 내·외신 기자 100여명이 있었지만 이 같은 방송사들의 ‘침묵’으로 인해 현장 보도에서 낙종을 한 꼴이 됐다.

지나친 확대해석일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그 시간 TV 3사가 합동 생중계 카메라까지 갖다 댄 기념식장 현장에서 대학생들의 시위가 아닌 국가적 위협 상황이 벌어졌어도 방송사들이 아무런 설명 없이 과연 침묵하고 있었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