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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다시보기] 왜, '왜'를 묻지 않고'누구'를 따지는가

언론다시보기  2003.06.04 13: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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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은 영화월간지 프리미어 편집장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했던 선배 한 분이 작가로부터 “우리가 못 찾을 사람은 없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TV의 힘이 새삼 무서워지는 순간이다. 난 가끔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럴 사람도 없겠지만 혹시 누가 나를 찾는다고 나서지 않았으면, 빌게 된다. 초등학교 때 학적부나 생활기록부가 카메라 앞에 펼쳐지는 것부터 저래도 되나 싶은데, 성적이 좋은 경우에는 자랑스럽게 공개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엔 어물쩍 사진과 주소만 훑고 넘어가는 장면에 가면, 해도 너무 하는군, 중얼거리게 된다. 그런 별 것 아닌 장면 하나하나가 모여서 이 사회에서의 행복을 성적순으로 만드는 것 아닌가. 나아가 개인정보 공개의 위험성에 대한 이 사회의 자의식 없음을 쉽게 설명해주는 증거 아닌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논란을 보도하는 일부 언론의 태도에서도 똑같은 자의식 부재를 본다. 기본적으로 이 문제는 네이스라는 제도에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는가, 있다면 얼마나 큰가라는 것이 핵심이다. 한 전교조 교사의 말대로, 정보관리의 효율성을 위하여 “1000만명에 이르는 국민들의 정보를 서버 16대에 모은다는 발상”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가 필요한 것이었다. 누가 반대하고 누가 찬성하느냐보다는, 왜 반대하고 왜 찬성하느냐에 더 주목했어야 할 문제였다. 그런데 초등학교 교장 자살사건 때 이미 자신들이 미워하는 자가 누구인지 본때 있게 보여주었던 수구언론들은, 이번에도 사태를 전교조와 교총으로 대별되는 교사사회의 내분과 대립, 전교조와 교장단 간의 다각갈등으로 부채질하기에 여념이 없다. 일부 진보언론까지도 “수험생 큰 혼란 예상” 등등, 사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단순 예측보도를 하고 있다. 본질과 현상에 있어서, 늘 현상을 앞세우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언론의 속성일까.

사실 네이스는 전교조가 반대하고 나서기 이전에 언론이 먼저 의제로 설정해서 사회적 주의를 환기했어야 할 문제였다. 언론들이 스스로 의제 설정하는 기능을 방기하고 각종 시민사회단체의 문제제기를 뒤따라가기에 급급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네이스의 경우 그 적용대상이 국민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광범위한 데도 너무도 명확한 인권침해의 소지에 대해 파고 들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학생들의 인권과직접적으로 관계된 일인데 학생들 스스로의 의견을 아무도 묻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하니리포터의 한 기자가 넷상에서 지적하고 있을 따름이다. 전교조가 반대하니까 무조건적 ‘강행’으로 입장을 바꾸고는 한판 싸워보자고 나선 교총과 교장단의 행동의 모순에 대한 지적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다.

네이스 관련보도는 중요한 사안마다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국민들의 비이성적 감정을 부채질하는 수구언론들의 버릇을 드러내준 또 하나의 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