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출범 100일이 지난 지금 언론 개혁의 방향과 속도, 온도 등 한국 언론계가 맞고 있는 현실에 대한 언론계 안팎의 평가와 진단이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 큰 줄기의 한 쪽에는 말만 무성했지 혼란만 초래하고 있다는 혹평이 기세 등등하게 자리잡고 있고, 다른 한켠에는 언론 정상화의 계기라는 호평이 위치하고 있다.
한국 언론학계의 양대산맥인 한국언론학회와 한국언론정보학회를 이끌고 있는 김민환 교수와 권혁남 교수를 초청해 현 정부의 언론개혁 정책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두 교수는 모두 “노 정부의 언론정책이 세밀한 계획 없이 추진된 것 같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 했지만 공동배달제, 지방언론육성 등 각론에 있어서는 서로 다른 견해를 제시하기도 했다. 좌담 내용을 간추린다.
-노 정부 언론개혁의 방향과 언론의 현주소에 대해
▲김민환(이하 김)=정부 출범후 기자실 폐쇄, 브리핑룸 설치, KBS, MBC 인사 등 너무 즉흥적이고 계획 없이 진행돼 온 것이 언론개혁의 현실이다.
노무현 정부는 언론개혁을 하겠다는 결의와 열의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런 일들에 대해 정부와 국회 그리고 언론사가 자율적으로 할 일 또 독자들이 해야 될 일을 정리해 청사진 마련을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지난 100일간을 돌아보면 거칠다. 기자실 폐쇄, 브리핑룸 개설은 선진적인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그 운용을 잘못했다. 기자실을 폐쇄하고 대변인 제도가 얼마나 좋은가 하는 것을 전문적 지식을 갖춘 사람을 통해 잘 홍보해야 했다. 그런 부분을 너무 성급하게 지나다 보니 각 부처의 대변인 제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것이다.
▲권혁남(이하 권)=정부 출범 100일이 지난 시점에서 현 정권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다. 그러나 언론 개혁에 대해서는 기대에 못 미치고 실망스러운 것이 사실이며 그 부분은 동감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신문시장을 고려해볼 때 언론개혁의 필요성과 당위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신문시장은 이미 기능성 측면에서 시장의 실패에 빠져 있기 때문에 하루빨리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복원시켜야 한다.
앞으로 국민들에 대해 언론개혁 실종에대한 의구심을 풀어줘야 한다. 구체적 안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김=현재 언론개혁에 대한 기대는 과부하 상태이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은 한계가 있고 정부가 나서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다. 언론개혁은 첫째 ‘언론구조의 개혁’에 대한 문제로 시장과 소유구조의 문제가 그것이다. 3사 방송국과 3사 신문사가 언론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상태며 사주와 그 가족이 신문편집권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의 구조적 문제점에 대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즉 시장구조에서 방송3사의 독과점 상태를 어떤 임의적 조정을 통해서 바꾼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 소유구조 역시 개인의 소유주식을 임의적으로 바꿔 경영주를 바꾼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며 위헌의 소지가 다분한 발상일 뿐이다.
두 번째는 ‘관리개혁’이 문제인데 그것은 노 정부를 비롯한 어떤 정부도 끼어들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정부의 몫이 아니라 기자의 몫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다만 투명한 경영을 촉진시키기 위해 정부는 세무조사를 정례화 할 수 있는 방법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과거 DJ정부처럼 징벌적인 세무조사는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셋째로 ‘의식개혁’의 문제를 들을 수 있는데 기자들의 의식, 이 또한 전문성에 대한 문제로 정부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것은 오직 기자들의 문제다. 언론개혁은 기자와 독자가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것이 가장 원칙적인 방법이다. 즉 시장의 원리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
▲권=나는 의견을 달리 한다. 언론개혁은 정부도 어느 정도 선에서 관여를 해야 한다고 본다. 실패한 한국 신문시장은 불공정한 영업행위 즉 신문 강제투입, 과다한 경품, 판매 부수 부풀리기, 변칙적인 광고수주 등으로 인해 공정거래 질서가 위배되고 정상적인 체계가 모두 붕괴됐다. 또 경영 투명성이 전혀 확보되지 않고 있다. 즉 회사차원의 조직적 탈세, 변칙상속 등의 불법행위가 자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시장의 실패 가장 큰 원인은 조·중·동이 신문시장 질서를 교란시킨 혐의가 가장 크다.
지난 87년 언론자유화 이후 시장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신문은 내용상의 경쟁을 떠나 마케팅 차원의 경쟁이 돼버렸다. 이것은 올바른 시장경쟁이 아니다. 상품의 질을 갖고 경쟁한 것이 아니라 덤핑, 비정상적 마케팅 차원의 시장이돼버렸다. 특히 조·중·동은 그들이 갖고 있는 막대한 자본력, 기득권을 갖고 후발 주자들이 따라올 수 없게 만들고 후발 주자들을 고사위기로 내몰았다.
이런 신문시장의 비정상적인 기능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누군가 나서야 한다. 기자, 노조도 중요하지만 이것은 정부차원에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시장의 원리에만 맡긴다면 조·중·동만의 독과점은 지속될 것이다. 이런 신문시장의 독과점 상태로는 다양한 의견이나 여론, 가치들이 유도될 수가 없다. 결국 조·중·동만의 언론자유를 갖게 될 것이다.
-언론 시장의 독과점 문제에 대해
▲권=신문시장 투명성 확보에 관해 신문고시가 개정되고 정부의 공정거래위원회가 직접 규제를 나설 수 있는 것은 잘된 일이다. 신문시장의 실패를 정부가 방관해서는 안된다. 어느 정도 내에서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어야 한다. 결국 독과점 문제가 주요 화두인데 외국의 경우를 들어보겠다. 이탈리아는 한 개 신문이 전국적으로 20%, 특정 지역의 경우 50% 이상을 점유하면 독과로 지정하고 이를 넘을 때는 세금 등을 통해 강력히 규제하고 있다.
▲김=세금, 내부 부당거래 감시 등을 통한 규제라면 우리나라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보다 체계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권=프랑스도 30%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한 회사가 50%, 3개회사면 75%로 정하고 있다. 이는 외국 사례에 비해 너무 높다.
독일의 신문통계법을 보면 발행실질 부수, 언론사 비용체계, 구독료, 광고단가 등 신문의 모든 활동에 대해 매년 공포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우리 신문시장은 사외 이사제, 우리사주제를 적극 도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회사 조직차원에 대해 감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어떤 것은 정부가 할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엄격하게 접근해 가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의회가 해야 할 일들이다. 더욱이 우리나라 의회는 여소야대로 한나라당이 지배하고 있다. 한나라당에서 그런 입법에 동의할지는 미지수이다.
-‘신문공동배달제’에 대한 의견
▲권=국민 돈을 가지고 군소 신문에 대해 도움을 줄 수 있냐는 반발이 있으나 여론의 다양화, 다원화란 점에서 여론 독점 해소라는 측면에서도 꼭 필요하다. 조·중·동을 끊지 못하는 이유 중 배달문제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본다. 일례로 전주에서는문화일보를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는 상황이다.
▲김=자율적으로 공동배달제를 실시하도록 만들고 그것이 가동될 경우 정부가 언론의 시장 독과점을 막기 위해 재정지원을 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자율적으로 공동배달제 형성이 안되고 있다. 왜냐하면 현재 각 지국 보급망이 힘들고, 공동배달제를 하면 배달만 하고 판촉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문사 배달은 배달회사에서 하고 판촉 및 수금을 위해 또 사람이 필요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결국 또 다른 판촉 및 수금 조직이 필요할 것이다. 배달만 하는 회사를 만든다는 것은 이중 투자다.
▲권=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공동배달제가 활성화돼 있고 국가 차원에서 배달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 조·중·동 3사가 말하는 소수 언론에 대한 지원을 반대하는 것은 횡포일 뿐이다. 독과점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 중소 신문에 대한 지원은 바람직 한 것이다. 조·중·동을 비롯한 모든 언론사가 원한다면 같이 해야 한다.
-방송의 자율성과 방송위원회에 대해
▲김=방송의 자율성과 독점 문제 해소가 가장 큰 문제다. 특히 독과점 문제는 방송 3사가 독과점 할 수밖에 없는 체제이다. 이런 상태에서 거대 공룡과 같은 KBS 체제는 KBS1과 KBS2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 분리가 독과점해소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노 정권이 권력을 잡고 있을 때 이런 일을 해야 할 것이다.
KBS 인사의 경우 전혀 방송에 대한 전문성 없는 신문기자 출신이 사장으로 낙점됐다. 이런 상황을 보면 노 정권의 언론개혁에 대한 의지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또 방송위원회는 냉정하게 감사하고 운영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여러 뉴미디어와 방송 융합 방송과 통신 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방송위원회에 자사 출신들을 데려다 놓고 할 수 있는 것 무엇이 있겠는가? 더 방조하는 것 밖에 기대할 수 없다. 반개혁적이라는 평이 적당하다.
▲권=방송위원회 선임과정에서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심어주고 실망감을 주었다. 방송위원회는 정치적 독립성이 중요하고 정파로부터 공정해야 되는데 정치인들이 들어가 있는 사태는 정치적, 정파적 독립성이 보장될 수 없다. 또 특정방송 출신이 들어가서 독립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또 한나라당이 보이는 집착은 대선에서 방송 때문에 졌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 같은데 방송사 대선보도 분석결과 KBS, MBC의 편파적 방송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SBS가 노골적으로 이회창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나 한나라당의 주장은 억지임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는 방송위원 선임 방식에 대해 대폭적 개선이 필요하다. 정당인 배제, 특정방송사 출신은 배제하는 방식으로 나 가야 할 것이다.
-지방언론지원법 등 지역언론의 현안에 관해
▲김=지금의 지방신문이 어려운 것은 난립 때문에 경영이 어려운 것이다. 정부의 지원, 특히 재정적으로 지원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는 시장원리를 외면하는 발상이다. 예로 현재 10개의 신문사가 있는데 정부가 보조금을 준다면 20개로 늘어날 것이다. 그러면 경영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그때 또 지원해야 하는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중요한 것인데 정부 지원은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다.
▲권=지방신문은 한마디로 위기 차원을 넘어서 고사 상태에 있다. 예컨대 어항 속의 물고기가 있는데 산소가 줄어드는 상태로 고기만 많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건강한 고기들을 살려보자 하는 뜻으로 일부 신문사에 선별적 지원을 해보자는 것이다. 전체적 지원이 아니고 선별적 지원을 말하는 것이다.
▲김=그 지원권을 정부가 갖는다는 것은 채찍으로 통제하다 이제 당근으로 통제한다는 발상과 다를 것이 뭐가 있겠나?
▲권=물론 그런 위험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권에 예속화가 될 수 있는 상황, 권력과 무관하게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런 모든 상황들이 결국 지방 분권화가 이루어져야 해결될 수 있다. 모든 문제의 가장 근본은 역시 수도권의 집중이다. 시안까지 나와 있는 상태이므로 시급히 선별해서 지원을 해야 한다.
▲김=선별이 가능하다는데 어떻게 선별할지, 누가 선별할지, 정권에서 돈줄 사람의 의사가 영향력을 미칠 수밖에 없으므로 상당한 위험이 내포돼 있다고 생각한다.
지방언론의 난립을 방지하는 것은 간단하다. 우리나라에서 신문시장의 진입장벽이 허물어졌을 때 그 진입 장벽을 허문 것은 민주화를 주장한 국민들이다. 그러나 그 결실로 신문업계에 등장한 세력들은 일제시대는 친일파, 4·19 이후는 토착브로커, 지금도 지방의 경우 비리의 주범들이라 할 수 있는 토착 기업인들로 언론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신문 뿐만 아니라 신문 모기업까지도 세무조사를 정례화하고 부당 내부거래를 일체 못하도록 기업 감시를 더 엄격하게 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면 언론에서 손뗄 사람은 많을 것이다. 나는 어떤 지원을 해주는 것보다 그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선별해서 지원한다면 로비가 뛰어난 사람들만 살아남을 가능성이 많다.
▲권=그것은 크게 우려 안해도 될 것이 지방신문발전위원회나 학계,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해서 보다 구체적인 방안과 선정기준을 갖고 공청회를 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지금 그냥 놔두고 있으면 지방신문사는 다 죽게 되어 있다.
▲김=죽을 건 죽어야 한다. 악의를 갖고 시장에 뛰어든 사람들은 내쫓아야 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몇 개만 선정해서 지원하는 건 무리다.
▲권=시장의 기능에 따라 경쟁력이 없으면 ‘자동 퇴출’돼야 하는데 지방언론의 경우는 그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 않는가.
▲김=정부가 관리를 하면 될 일이다. 정부가 하면 될 일인데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감독해야 하지만 섣불리 건들면 지방 토호세력들에게 혼나니까 안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언론에 대해 구태여 지원하지 않아도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