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언론관련 발언 무조건 '대서특필'

진위·수위 상관없이 일부분만 확대보도

박미영 기자  2003.06.18 14:01:13

기사프린트

“바보들은 언론 탓만 한다”, “언론 죽일 방법 얼마든지 있지만…”, “언론이 초반부터 노 짓밟아”, “언론이 갈등 증폭시켜”….

참여정부의 대언론 정책을 비판하는 발언이나 언론보도에 대한 정·관계 인사들의 불만 등 언론관련 발언들이 발언의 진위나 수위에 상관없이 잇따라 대서특필되고 있다. “무조건 키우고 보자”는 식으로 부풀려지는 이같은 보도는 참여정부의 대언론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확대 재생산되면서 정부와 언론의 관계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12일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은 기자협회 세미나에서 ‘참여정부의 개혁 방향’에 대해 주제 발표하면서 “대통령이 언론을 죽이자고 하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당장 세무사찰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안 하겠다. 지금 같은 대명천지에 그럴 수 없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문 실장의 이같은 발언은 다음날 조선일보에 4단 크기로 큼지막하게 ‘문희상 실장, 노 대통령 비판한 언론에 강한 불만/“언론 죽일 방법 얼마든지 있지만…”’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됐다. 또 14일에는 사설까지 싣고 “아무리 언론보도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대뜸 ‘언론을 죽일 수단’부터 들먹이는 나라”라며 참여정부가 “언론을 짓밟고 헐뜯는다”고 비판했다.

문 실장의 발언은 지난 2일자 신문에도 ‘문희상 “언론이 초반부터 노 짓밟아”’ 등의 제목으로 주요하게 보도된 바 있다. 문 실장이 지난 1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초반부터 대통령을 짓밟나. 집에서 천덕꾸러기로 구박하면 밖에서 무얼 하겠느냐”며 보도에 불만을 토로하자 언론이 이를 부각시킨 것.

지난 11일에는 강성구 한나라당 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바보들은 언론 탓만 한다”며 참여정부의 언론정책을 비판하자 다음날 동아 조선 중앙에 커다랗게 보도됐다. 이들 신문은 각각 3면(동아 중앙)과 5면(조선) 머릿기사로 일제히 “바보들은 항상 언론 탓만 한다”는 제목을 달고 강 의원이 ‘노 대통령 후보 시절 언론특보 출신’이라는 사실을 부각시켰다. 특히 동아일보는 1면 국회 대정부 질문 기사에서도 “전투적 언론관 변해야”라는 강 의원의 발언 내용을 제목으로 뽑아 참여정부의 대언론정책을 비판했다. 그러나 이들 신문은 강 의원이 언론특보 시절 “기자들은 술 사주고 촌지 주면 만사 오케이”라고 말해 구설수에 올랐던 것이나 두 달만에 언론특보를 그만두고한나라당으로 옮겨간 철새정치인이라는 사실은 외면했다.

언론관련 발언으로 가장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은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 지난달 24일 이 장관이 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노 대통령 발언과 관련 “가까운 분들에게 인간적인 감정을 토로했는데, 가십이 아니라 신문 1면이나 TV 9시뉴스 톱으로 장식하는 것은 균형감각의 문제”라며 “언론이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지적하자 대다수 언론은 ‘이창동 “언론이 갈등 증폭시켜” 노 못해먹겠다 발언 옹호’ 등의 제목으로 주요하게 보도했다. 특히 이 장관의 발언내용은 ‘언론이 정권 홍보 도구인가’(국민 5월 27일자 사설), ‘갈등 부추기는 쪽은 이 장관이다’(동아 5월 26일자 사설), ‘국정 혼란이 언론 탓이라니’(동아 5월 27일자 시론) 등 사설과 칼럼 등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영호 전 세계일보 편집국장은 “뉴스가치에도 기준이 있는데 정치인의 계산된 발언이나 가십정도 수준의 발언도 자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라면 필요이상으로 크게 보도하고 있다”며 “이는 정부와 언론의 관계만 불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을 혼란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미영 기자 mypark@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