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간의 역사적 해빙이 이루어지던 지난 1970년대 초, 미국의 키신저와 중국의 조우언라이(周恩來)가 이런 문답을 나눴다고 한다. 중국인들의 유장함, 즉 심모원려를 강조할 때 흔히 인용되는 대목이다. 생뚱맞게 이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우리 언론의 ‘역사적 근시’ 증세가 날이 갈수록, 도가 지나칠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일례를 들어보자. 지난 6일 노무현 대통령의 방일 직전 일본 의회가 유사법제를 통과시켰다 해서 도하 각 매체들이 그야말로 난리를 쳤다. 이웃나라 국가 원수의 국빈 방문 당일에 전쟁준비법에 해당되는 유사법제를 통과시킨 것은 심각한 외교적 결례라는 것이 이유였다.
아주 틀린 주장이라고는 할 수 없겠다. 그러나 일본이 유사법제 제정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1년 9·11 테러 직후였다. 그리고 하원에 해당되는 중의원을 통과한 것이 지난 5월 16일이었다. 6일 유사법제를 통과시킨 참의원은 귀족 등의 명예직 의회다. 중의원 통과로 이 법은 사실상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일본 정부가 유사법제 제정에 나서 중의원을 통과할 때까지 약 2년 가까운 기간동안 한국 언론은 무엇을 했나. 유사법제가 무엇이고, 제정 추진의 배경은 무엇이며, 이 법이 제정됐을 경우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에 미칠 영향 등을 본격적으로 파헤친 언론이 과연 있었던가? ‘없다’고 하는 편이 정답일 것이다. 그저 단 하루, 우리의 민족적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길길이 날뛰었다가 그 뒤로는 또 ‘모르쇠’다.
오죽하면 우리 언론인의 입에서 이런 고백이 나왔을까.
“(이달 초 일본에서 열린) 한일 언론인 심포지엄에서 일본 참석자들은 유사법제 입법화를 비롯한 일본의 재무장화를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참석자들의 대부분은 이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지 못해 내심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이들이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에 제동을 걸어야 할 피해국가들은 왜 침묵해 왔는가’라고 따지면 어떻게 답변해야 하지요?”(이희용, ‘이기자의 고주리109’ 한국언론재단 홈페이지)
아무리 언론의 본령이 ‘그 날 그 날의 일을 기록하는 것(journalism)’이라지만 이건 너무 심했다. 지독한 ‘역사적 근시’다.100년은 커녕 10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있다. 이 역사적 격변기에 한국언론이 ‘역사적 근시’에 매몰돼 있다는 것은 분명 비극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민족사의 활로를 뚫어나가겠다는 노무현 정부가 이 ‘역사적 근시안’들과의 드잡이에만 골몰해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의 한국정치는 여야간의 정당 대결이 아니라 정부 대 조중동간의 말싸움이 전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누가 옳았는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이 싸움의 승패는 우리 사회의 진로 설정과 직접적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소모적인 기싸움에 불과할 뿐이다.
별것 아닌 꼬투리로 노무현 때리기에 열중인 조중동도 한심하지만, 언론 흉내를 내며 조중동 비판에 열을 올리는 정부도 보기에 안타깝다. 이제 정부도 언론도 제자리에 돌아가야 한다. 정부는 제대로 된 정책을, 언론은 공정한 감시와 비판을 해야 한다. 심판은 국민과 역사의 몫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부와 언론, 그리고 한국 자체가 역사의 패자가 되는 불행한 사태를 맞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