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의 핵심인사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6·15 정상회담과 관련해 북쪽에 건네진 막대한 규모의 돈과 관련된 혐의다. 청와대 비서실장과 경제수석, 국정원장 등 중책을 맡았던 이들은 현직에 있을 당시 여러 차례에 걸쳐 정상회담 대가는 없었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언론은 모두 그렇게 썼다.
그러나 이들이 권력을 떠난 지 100일이 지나지 않아 사실은 정반대로 드러나고 있다. 현재 특별검사의 수사가 진행되는 방향으로 이 문제가 귀결된다면 이들은 북한에 돈을 건네는 일에 관여한 정도가 아니라 그 과정에 막대한 규모의 별도 비자금까지 챙긴 것으로 판단된다.
여기서 생각해야 하는 문제는 이들의 거짓말이다. 이들은 언론과의 만남에서 뿐 아니라 국회에서 증언하는 과정에도 국민을 상대로 당당하게 거짓을 말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진실이 영원히 묻히리라 믿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거짓말을 포함한 자신들의 행위가 오로지 국민과 나라를 위한 충정에서 비롯됐다고 믿었기 때문인가?
거짓말에 관한 질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의 거짓말은 이 문제에 관한 내용뿐인가?
이들이 현직에 근무하며 한 나머지 말들은 과연 진실인가? 다른 공직자들의 말은 믿을 수 있는가? 도대체 국민은 공직자들을 믿을 수 있는가? 국민은 공직자들을 믿고 나라 일을 맡겨야 하는가? 이쯤 되면 정부에 대한 신뢰는 불가능해진다.
규모는 적지만 이보다 더 기가 막히는 일은 이회창씨 20만달러 수수설 관련 사안이다. 6월 16일 동아일보는 검찰이 이 사건에 대해 당시 청와대가 개입한 기획폭로일 수도 있다는 잠정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청와대에 근무하는 고위 공직자가 의도적으로 거짓 이벤트를 만들었고 그 이벤트에 국회의원과 언론이 동원돼 국민을 속였다는 뜻이다. 언론의 입장에서 더욱 유감스러운 사실은 이 사안의 핵심인물인 청와대 비서관이 오랫동안 기자로 일했었다는 전력이다. 이쯤되면 거짓말은 우리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한국 정치의 일상적 현실이 돼 버린다. 정치인들은 의원이건 정부의 고위직에 있건 직책에 관계없이, 거리낌없이 거짓말을 하고 언론은 그들의 거짓말을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국민에게 전한다. 한국의 정치보도가 근본적인 오보의 함정에 빠져있다는 뜻이고, 이는 정치보도에 관한 한 언론이 국민에게 진실을전해야 하는 기본적인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번 일련의 사건들을 계기로 정치인과 공직자의 거짓말은 철저히 단죄돼야 한다. 미국 언론의 신화로 내려오는 워터게이트 사건의 핵심 쟁점은 닉슨 재선 본부에서 민주당 건물에 도청장치를 설치했느냐 여부가 아니라 닉슨이 이 사실에 대해 거짓 증언을 했는가 아닌가 였다. 닉슨은 결국 거짓말 때문에 대통령직을 떠나야 했고, 정치에도 더 이상 발을 붙일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거짓말 정치인들은 닉슨처럼 단죄 받은 경우가 없다. 정치인의 거짓말은 결국 언론이 공론을 일으켜 단죄하는 방법 밖에 없다. 지금부터라도 의도적으로 국민을 속이면 다시는 공직에 나설 수 없도록 제도를 만들어 가는데 언론이 앞서지 않으면 한국 민주주의는 공작정치의 경연장으로 남을 수밖에 없고, 언론은 악의적인 정보공작의 도구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