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이 들썩거렸는데 쥐 한 마리가 튀어나오더라. 1999년 1월 이종기 변호사의 비밀장부가 MBC 보도를 통해 세상에 드러나면서 법조계가 들썩이고 세상이 소란스러웠다. 이 변호사에게 사건을 소개한 이가 378명이나 되고 여기에는 판·검사 등 전현직 공무원이 200여명이나 되었단다.
대검찰청과 대법원이 나서서 자체조사를 하고 금품을 수수한 검사 25명중 6명이 사표, 나머지는 징계 또는 경고를 받았다. 금품수수 판사 6명도 대법원에 비위 사실이 통고되었다.
당시 대검찰청은 발표를 통해 “이 사건을 통하여 국민들이 검찰에 요구하는 도덕성과 청렴성이 어느 정도인지 깊이 깨달았으며 국민 여러분의 따가운 비판과 애정어린 질책을 가슴깊이 받아들여 다시는 이 같은 비리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을 하겠음.…내부의 반발까지 초래할 만큼 가혹할 정도로 성역을 두지 않고 철저히 수사하여 검찰과 법조계가 새로 태어나는 계기로 삼았음”이라고 국민 앞에 엎드려 사죄했다.
이제 태산이 우르릉거린 지 4년 남짓. 엉뚱하게도 호랑이나 공룡쯤 나오리라는 기대는 간 곳 없고 쥐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그때 그 보도를 시작했던 대전의 기자들이 이 변호사의 업무를 방해하고 명예를 훼손했다며 징역형까지 선고하였다. 그것도 모자라서 파렴치한 일을 한 이들에게 반성과 보속의 기회로 삼으라고 내리는 사회봉사명령까지 100시간 안팎을 내렸다. 개인과 사회에 대한 언론의 책임을 보다 깊이 인식하도록 사회봉사를 명한다니 이제 어느 기자도 법조비리를 파헤칠 엄두를 내기 힘들지 싶다.
범죄사실의 요지는 기자들이 마치 이 변호사가 판·검사 등에게 알선료를 제공하고 의뢰인들을 불구속처리 받거나 대전지역 판·검사와 뒷거래를 하여 사건 처리한 것처럼 허위보도를 하여 이 변호사의 업무를 방해하고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도 자체에도 이 변호사가 판·검사들에게 알선료를 제공했다는 내용은 전혀 없다. 사건 소개를 해준 공무원들을 나열하고 “이들 가운데 일부”라 표현했을 뿐이었다. 또한 대검찰청 발표문을 보면 “고검 검사장 아무개 1000만원 술대접”으로 시작하여 23명의 검사에게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의 떡값, 위문금 등을 준 사실들이 길게 나열되어 있다.
보도는 바로 이러한 떡값, 전별금, 향응을 ‘뒷거래’라 표현했다.
1심 판결이 이 보도를 허위라 판단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지나치다. 기자들의 이 보도가 공익목적이 아니고 이 변호사를 비방할 목적이었다고 판다한 데 이르면 그 정도가 더 하다. 기자들의 이 보도로 법조비리의 상당 부분이 개선되어 가고 있다. 공무원들에게 소개료나 뇌물을 주고 법조비리를 일삼다가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이 변호사에 대해 그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본 이번 판결은 대법원 판결에 대한 희화화요. 이번 사건 보도를 계기로 법원, 검찰, 여론, 국민들이 기울인 법조정화 노력을 웃음거리로 만든 것이다.
다음 상급심에서는 쥐 한 마리가 아니라 법조비리를 꾸짖는 호랑이 한 마리가 나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