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새 매체비평프로그램 ‘미디어포커스’가 지난달 28일 첫 방송에서 과감한 자기 반성을 시도해 호평을 얻고 있다.
‘미디어포커스’는 지난달 28일 ‘KBS, KBS를 말한다’ 편에서 “공영방송 KBS가 언제까지 힘있는 자, 가진 자의 편에 설 것인가”라며 지난 80년부터 KBS가 권력에 굴복해온 모습, 정부정책 홍보 및 뉴스 제작 사례부터 자기검열의 내재화, 인적 청산의 문제, 사장 중심의 관료적 조직 문화 등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정리했다.
‘미디어포커스’는 KBS를 ‘해바라기 언론’ ‘무식한 충성맹세’ ‘민주화를 가로막은 집단’이라고 표현하며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비판했다. 지난 80년 내란음모죄로 군사재판을 받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불순분자로 몰아붙였던 KBS가 17년뒤 민주주의의 상징이라고 말을 바꾸면서 어떤 사과나 해명도 하지 않은 것을 첫 사례로 지적했다. 또 80년 전두환 장군의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 서면서 ‘낯뜨거운’ 헌사를 아끼지 않은 점,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을 극렬 난동분자로 만들었던 과거도 고백했다.
‘미디어포커스’는 특히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 나겠다던 5년 전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KBS에 집중적으로 화살을 돌렸다. 99년 ‘특별기획-거실에서 만난 대통령’이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편집이 이뤄지고, 질문 내용도 일방적인 정권 홍보와 해명 기회였다는 점을 비판했다. 또 녹화중계 예정이었던 김대중 대통령의 필라델피아 자유메달 수상식을 돌연 생중계한 것에 대해서도 ‘충성경쟁’이라고 꼬집었다. 동강 관련 프로그램이 처음 소신과 다르게 정부의 압력에 따라 변화를 겪는 과정도 담았다. 당시 보도국장의 지난 5월 퇴임사 가운데 “청와대 오찬에서 ‘동강댐 건설은 대통령의 뜻이다, KBS가 협조해야 한다’고 했다”는 부분이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로 공개됐다.
‘미디어포커스’는 이같이 KBS가 정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이유를 권력의 옹호자로 나섰던 KBS 인사들이 계속 출세 가도를 달리고, 내부 인적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점에서 찾았다. 인적청산의 실패는 일선 제작진에게 영향을 미쳐 외압과 압력을 두려워하고 자기검열을 내재화하는 등 KBS 저널리즘의 실종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한빛은행 불법대출 사건을 보도하면서 당초 기자가 쓴 앵커 멘트에 있던 박지원 전 장관 부분을 데스크의 지시로 수정·삭제한 점, 파업을노조 이기주의로 몰아가고 정부와 사용자측 입장만 대변하는 천편일률적인 보도태도가 도마에 올랐다. 여전히 정권과 가진 자의 논리를 대변하는 KBS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따라서 ‘미디어포커스’는 “기자와 PD가 정권의 압력과 간부의 지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내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안으로부터의 개혁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고 끝을 맺었다.
‘미디어포커스’가 방송된 이후 KBS 안팎에선 ‘신선하다’ ‘용기있다’ 등등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은 지난달 30일 논평에서 “KBS가 권력에 굴종해 온 근본 원인을 추적하려 애쓰고, 과감한 ‘내부개혁’을 주문하는 용기있는 보도 태도를 보여줘 언론계 종사자 모두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며 “첫 방송에서 보여준 초심을 잃지 말고 언론 바로 세우기를 위해 정진해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KBS 내부에서도 일부 간부들은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느냐” “KBS 출신 인사들까지 거론한 것은 너무 심했다”는 볼멘소리를 하고 있지만 일선 기자와 PD들은 “프로그램 방향과 취지에 동의한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선 “더 아프게 반성해야 했다” “KBS의 구조적인 한계, 시스템 부분을 보다 깊이 있게 다뤘어야 했다”는 아쉬움도 흘러나왔다. 민언련은 “권력에 부역해 승승장구해왔던 인물 전체에 대한 적나라한 비판이 이뤄지지 못한 점은 내부가 내부를 비판하는데서 오는 ‘어쩔 수 없는 한계’로 비춰졌다”고 지적했다.
최영묵 성공회대 신방과 교수는 “아직 첫 방송이고 방향성을 제시한 것에 불과하지만 자기 반성을 근거로 향후 KBS를 포함한 언론 비평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