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KBS 결산안을 부결하는 과정에서 방송독과점이 신문독과점보다 더 심각하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근거와 논리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문과 방송의 특수성, 독과점 성질이나 사회적 규제 장치 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단순하게 수치상으로만 비교하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이같은 논란은 지난 1일 KBS 결산안을 심사하던 국회 본회의에서 한나라당 이경재 의원이 “방송 3사가 전체 방송시장의 77%를 점유하면서 조중동 3사의 과점을 말할 자격이 없다”, “신문이 과점이라고 하면서 70% 이상을 과점하고 있는 방송에 대해 결산을 승인해 줄 수 없다”고 주장한 데서 비롯됐다. 앞서 하순봉 한나라당 언론특위 위원장도 지난달 19일 방송개혁안을 발표하면서 “방송 3사가 시장의 90%를 점하는 독과점 체제는 반드시 시정돼야 하며 국민에게 자유로운 선택권을 돌려줘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방송계와 언론학자들은 방송의 경우 방송위원회의 허가·규제기능, 시청자단체 감시·비판 등 독과점 폐해를 차단할 사회적 제어장치가 어느 정도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신문과 방송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다. 또 방송은 전파의 희소성 때문에 자연스럽게 과점이 형성되는 측면이 있고 이 때문에 방송의 공영성과 공익성이 강조돼 왔음을 간과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히려 신문의 경우 독과점을 제어할 장치가 거의 없고, 정상적인 여론형성을 방해하는 혼탁한 신문시장이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주동황 광운대 신방과 교수는 “방송은 독점에 따른 폐해를 제어할 규제장치가 있고 논조도 3개사가 다르기도 한데 신문은 독과점 수치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해도 논조는 보수일색으로 차이가 없다”며 “방송과 신문은 독과점의 성질 자체가 다르며 신문의 독과점 폐해가 더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언론노조 KBS본부도 성명을 통해 “신문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조중동은 소유구조와 자본의 성격이 족벌세습을 통한 사적 자본인데 반해 SBS를 제외한 지상파방송은 공적자본에 의한 공영적 소유구조를 확보하고 있어 양자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전제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조중동에 의한 신문시장 독과점보다 방송독과점이 더 심각하다는 한나라당 주장은 본질을 은폐하고 스스로 조중동의 앞잡이 노릇을 자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독과점을판단할 시장점유율 수치가 제각각 인용되고 있는 것과 관련 체계적인 연구와 사회적 합의가 시급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권혁남 전북대 신방과 교수는 “방송독과점을 판단할 때 그 기준을 광고점유율로 할 것인지, 시청률점유율로 할 것인지에 따라 보는 시각이 모두 다르다”며 “사회적 논란이 된 마당에 시민단체 학계 방송계 광고계 등이 공동으로 정확한 조사작업을 벌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주 교수도 “현재 언론의 시장점유율과 관련 어떤 것을 기준으로 독과점을 판단할 것인지 합의가 없는 상태”라며 “외국의 경우 부수, 시청률, 매출액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신문과 방송의 독과점이 확실하다면 규제하는게 마땅하고, 우선 시장점유율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