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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사법부의 개부심을 기다린다

기자칼럼  2003.07.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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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덕원 대전MBC 편집제작부장



지난 99년 1월 7일. 당시 취재부장이었던 나는 며칠 째 밤잠을 설치며 이른바 ‘비장부’로 일컷는 이 장부의 내용이 정말 사실인가? 어떻게 처리할까?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다 서울 MBC 전국부(제2사회부)에 정보보고를 했다.

정보보고가 끝난 뒤 30분도 채 되지 않아 당시 대전지방검찰청 검사장을 비롯한 검찰수뇌부가 대전MBC를 찾아와 보도자제를 요청했다. ‘그래. 검사장이 찾아와 부탁을 할 정도라면 이 장부는 사실임에 틀림이 없다’는 것을 직감한 나는 회사에 보도를 하겠다고 보고했다.

40여일에 걸친 보도. 그후 4년 반 동안 당시 취재팀은 온갖 송사에 시달리다 지난달 20일 마침내 전과자가 됐다. 법정에 서서 젊은 판사의 노기가 가득한 꾸지람을 들으며 나는 분노에 앞서 모멸감에 치를 떨어야했다.

이제 시간이 흘러 냉정을 되찾았지만 당시를 생각하면 이제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참을 줄도 알다니 하면서 쓴웃음을 짓기도 한다. 이번 1심 재판부의 판결을 지켜보면서 우리사회가 이미 선진국형 시민사회로 전환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특권층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시민사회의 요건은 인간의 평등이며, 우리 헌법은 제정 당시부터 “모든 국민은 사회적 신분에 의해 생활의 모든 면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사회적 특수계급은 일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문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을 보고 우리사회에서 엄연히 판사, 검사 등은 특권층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사람은 비단 당사자인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진정한 법의 정신은 어디로 갔는가. 기자의 양심에 따라 갖은 난관을 극복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법조 관행을 파헤친 내가 파렴치범이나 받는 사회봉사명령을 받다니…. 양심의 빈곤, 윤리의 타락, 정의의 굴절. 나는 앞으로 대낮에도 등불을 가지고 다녀야겠다고 다짐했다.

맹자는 말했다. 가장 큰 슬픔은 마음이 죽은 것이라고. 나는 앞으로 나의 남은 기자생활을 모든 이가 법 앞에 공평한 올바른 시민사회의 형성을 위해, 특권층의 지배를 거부하는데 온몸을 사르겠다는 각오를 다짐해보고자 한다.

지리한 송사로 지칠 대로 지쳤지만 이번 재판부가 오히려 나에게 다시 싸울 힘과 용기를 줬다. 어찌 보면 1심 재판부에 고맙다는 마음을 전해야 하는 지도 모르겠다.

지리한 장마로 물난리가 온 대지를 휩쓸면 거기에는 온갖 앙금이 엉겨붙어 있다.이때 그 앙금을 씻어내는 비를 우리는 ‘개부심’이라 일컷는다. 7월 진정한 사법부의 개부심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