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고려인 특유 근면성이 카자흐스탄 발전 밑거름"

카자흐스탄 방문기

방문기  2003.07.09 00:00:00

기사프린트

신광하 목포MBC 보도부 기자





인구 1500만명 중 10만이 고려인…언론사만 1800여개

한글신문 ‘고려일보’ 창간 80주년 기념식 참석하기도





“한 줄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우리는 사흘 밤낮을 걸었다.”

6월28일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최대도시 알마티의 한국어교육원 대극장. ‘선봉’에서 ‘레닌기치’로, 다시 ‘고려일보’로 80년을 이어온 옛소련 유일의 한글 주간신문 ‘고려일보 창간 기념식’이 열렸다. 평생을 ‘고려일보’와 함께 한 김성조 부주필의 감회에 찬 목소리가 이어질 때마다 극장을 가득 메운 5백여명의 고려인들의 환호와 탄식, 그리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상기 기자협회 회장 등 한국기자방문단도 어느덧 감회에 젖었다. 밤늦게 알마티에 도착해 여독이 채 풀리지 않았지만, 중앙아시아 한인 이주사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 현장 앞에 방문단은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기념식에 앞서 열린 고려인 원로들과의 기자회견에서 방문단은 한인들의 이주와 이주 후 생활, 그리고 현재 모습을 확인했다.

1937년 9월말 일본 간첩행위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스탈린이 서명한 명령서 한 장으로 시작된 극동지역 한인들의 강제이주는 이후 90차례에 걸쳐 계속됐고, 10만명의 한인들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곳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소개되었다. 전 고려일보 기자 정상진(85)씨는 “아시아 대륙의 한쪽 끝에서 다른 끝으로 강제 이주시킨 것은 민족혼의 뿌리를 근본적으로 파괴한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겨울이 시작되는 카자흐스탄의 10월, 북풍이 밀려오는 우슈토베 벌판에 내려진 한인들은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었을까? 일행은 7월1일 알마티에서 4백km 가량 떨어진 우슈토베로 향했다. 현지 고려인협회의 안내로 최초 정착지인 ‘베슈토베’(세 개의 산이란 뜻)를 찾았다. 황량한 벌판에 10여m 높이로 솟아오른, 산이라기 보다는 둔덕이라는 표현이 맞을 법한 곳, 러시아식 묘지가 자리잡은 들판 한가운데, 토굴의 흔적이 있었다. 잡초사이로 보이는 굴 입구는 어린이조차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비좁았다. 1937년 겨울의 찬바람 속에 숨져간 사람들은 이름 없는 묘지가 되어 산아래 남고, 살아남은 한인들은 생명을 이어갔다. 방문단은 묘지 앞에서 묵념을 하며 ‘아침 이슬’을 합창했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한낮의 찌는 더위에 우리들의 눈가에는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방울이 아롱거렸다.한인 이주민들이 성공적으로 카자흐스탄에 정착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카작 주민들의 헌신적인 도움 때문이었다고 우슈토베 전 고려인협회장 이유냐(79)씨는 말했다.

우슈토베에는 독립국가연합(CIS)에선 유일하게 한글을 가르치는 ‘제르진스키’ 학교가 있다. 이 학교에는 1학년부터 11학년까지 3백명이 재학중인데, 1백20명이 고려인이다. 이주 당시 3살이었던 ‘제르진스키’ 교장 남 일고르(68)씨는 “고려인 학생들은 일주일에 2시간씩 의무적으로 한글교육을 받는다”고 했다. 일행은 준비해 간 한국동화책 1백여권과 학용품 등을 전달하며 고려인 3, 4세들과 ‘사랑으로’를 합창했다.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카자흐스탄 공화국 면적은 2백72만㎢. 인구는 1천4백90만명이며 고려인은 10만여명이 살고 있다.

카자흐스탄에는 3개의 방송사와 1800개 신문 등에서 2만명의 기자들이 취재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인구 4백만의 카자흐스탄 최대도시 알마티와 수도 아스타나 등 14개 지역에 기자들의 취재 편의와 정보공유를 위한 국립 프레스 클럽이 운영되고 있다. 현재 카자흐스탄 언론계의 최대 현안은 ‘언론관계법’ 제정 문제라고 한다. 일종의 취재준칙과 같은 것이라고 하는데, 이미 정부안이 마련돼 의회통과를 앞두고 있으며, 기자들은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세이카지 마타예브 카자흐스탄 기자협회장은 말했다. 그는 “고려인들은 특유의 근면성과 뛰어난 두뇌로 카자흐스탄 발전에 큰 역할을 해냈다”며 “고려인들의 소망인 한반도 통일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글신문이던 ‘고려일보’는 10년 전부터 러시아어와 한글을 병용해 발간하고 있다. 세월이 지날수록 고려인 사회에서 한글이 잊혀지고 있는데다, 러시아어와 한글을 동시에 구사하는 젊은이들은 모두 카자흐스탄 현지에 진출하는 한국기업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란다. ‘고려일보’ 채유리 주필은 “현재 취재와 편집을 맡고 있는 부국장급 이상 기자들이 은퇴하게 되면 어떻게 신문을 꾸려갈 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6월28일 오전 카자흐스탄 고려인 사회의 기자회견으로 시작된 7박8일의 일정은 빡빡했지만 방문단에겐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었다. 특히 고려일보 제작진과 함께 산천어 낚시와 함께 뚜르겐 계곡에서 ‘고향의 봄’을 합창하며 어울려 춤추던 시간은 `우리 모두 한민족’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천산산맥의 만년설과 침불락의 수려한 경관, 끝없는 벌판 사이로 펼쳐지는 거대한 캅차카이 호수, 그 가운데 131개 민족이 서로 어울리며 인정을 베풀며 살아가고 있는 카자흐스탄 공화국. 한국에서 5천km 이상 떨어져 있지만 카자흐스탄 발전의 중추인 고려인이 있기에 더욱 정겨운 곳이다. 7월4일 귀국길 새벽 알마티 국제공항에서 바라본 일출은 장관이었다. 취재진중 누구도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잊혀지지 않는 카자흐스탄과 카작 민족 그리고 고려인의 따뜻함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끝으로 취재진이 카자흐스탄에 머무는 동안 물심양면으로 헌신적인 지원을 해준 태석원 대사를 비롯해 주카자흐스탄 대사관 직원 여러분께도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