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스트로서의 원칙보다는 특종을 앞세우는 언론계 풍토에서 동아일보의 오보는 운 나쁜 한 신문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동아일보의 굿모닝시티 관련 오보 소동을 지켜본 한 중앙일간지 편집부 기자의 얘기다. 그는 “기사의 완결성을 갖추는 것보다 특종 한 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언론계 풍토에서 유사한 오보는 언제든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한 신문사 논설위원실장은 “요즘은 신문을 보고 사설 발제를 할 수가 없다”며 “잘못된 보도가 많아 팩트를 일일이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보 원인에 대해 “각사가 경쟁적으로 보도를 하다보니 사실 확인에 충실하지 못한 경우가 있고, 일부 언론의 경우 기사 방향을 정해놓고 팩트를 끼워 맞추기 식으로 넣어 오류가 생기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 크고 작은 오보 잇따라
실제로 언론의 크고 작은 오보는 끊임없이 양산되고 있다. 올초 참여정부의 인수위 활동과 관련, 언론은 1면 머릿기사로 수많은 뉴스를 쏟아냈지만 이 가운데 일부는 오보로 확인됐고 인수위는 오보 백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지난해 4월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술자리 발언은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이 이인제 후보측의 발언을 인용해 1면 머릿기사로 “집권하면 메이저신문을 국유화하겠다”고 보도하면서 파문을 일으켰으나 본보가 술자리에 참석했던 기자들에게 확인한 결과 ‘국유화’ 발언은 없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에는 언론이 외신을 인용해 ‘바그다드 함락’, ‘후세인 사망’ 등 수차례 오보를 하기도 했다.
올초 연합뉴스의 ‘길재경 서기장 부부장 망명’, 지난해 중앙일보의 ‘김홍걸 씨 LA 골프 회동’, 대다수 신문의 ‘점수가 오를 것’이라는 수능보도 등도 곧바로 오보로 밝혀졌다. 이외에도 ‘김일성 피격 사망 사건’(86년) ‘평화의 댐’(86년) ‘김정일 처 성혜림 망명’(96년) ‘탈북자 유태준 공개처형’(2001년) 등은 대형 오보로 언론사에 남아있다.
오보로 인해 언론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판례도 있다. 95년 국민일보는 장기기증운동본부의 비리 사실을 13회 분량으로 보도했다가 보도 대상자의 정정보도 청구소송으로 법원에서 “1면 머릿기사 3회를 포함, 10일간 총 13회에 걸쳐 반론문을 게재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보도대상자의 반론을 제대로 싣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같은 판결을 내렸으나 1달 여만에양측의 합의로 판결 내용이 실행되지는 않았다. 이에 앞서 파스퇴르유업과 중앙일보 소송건에서 재판부는 보도 횟수에 따라 반론 횟수를 보장하라는 판결을, 89년 조선일보의 문익환 목사 보도에 대해 1면 머릿기사로 반론문을 게재하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 신중성 결여가 원인
언론학자들은 오보의 원인에 대해 ‘아니면 말고’ 식의 보도태도, ‘신중성’보다는 ‘신속성’에 치중하는 보도관행, 편집국내 냉철한 검증시스템 미비, 정치적 편향성 등을 꼽았다. 김영욱 언론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신속성’에 비해 ‘신중성’이 저널리즘의 주요한 가치로 인식되지 못하는 풍토가 오보를 양산한다”며 “기사에 대해 ‘빨리’ 보다는 ‘틀림없다’는 쪽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언론이 사회 문제에 대해 자기지향성(정파성)을 갖고 특정 정파에 경도돼 있으면서도 스스로 객관적, 중립적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며 “언론은 특정 정파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 자기지향성에 따라 기사화하려는 유혹에 쉽게 빠져 오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사실확인’원칙 되새겨야
오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한 신문사 국제부 차장은 △편집국 간부들의 원활한 의사소통 △기사에 대한 건전한 의심 △보도 전에 나오는 경고음에 귀기울일 것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옴부즈맨 제도 활성화, 심의실 기능 강화 등도 한 방안으로 제기된다.
법적 장치로 오보를 줄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른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 보도에 고의성이 있을 경우 거액의 돈으로 보상토록 하자는 금전적 배상 제도가 그것이다. 김창룡 인제대 교수는 프레시안에서 “영국의 경우 한해 수십개의 크고 작은 신문사들이 소송에 시달려 문을 닫거나 정간할 정도”라며 이 제도를 소개했다.
한 전직 편집국장은 ‘사실 확인’이라는 언론의 ‘원칙’을 새삼 강조했다. 그는 “정권과 일부 언론이 갈등을 겪으면서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보도가 더 많아졌다”며 “동아일보 오보건은 한 신문사만의 문제로 치부될 게 아니라 전체 언론이 ‘정도’를 지키고 있는지 냉철하게 돌아볼 기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