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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다시보기]NYT의 인사(人事) 보도

이재경 교수  2003.07.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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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뉴욕타임즈는 지난 7월 15일자 1면에 자기 회사 관련 기사를 실었다. 빌 켈러(Bill Keller)라는 칼럼니스트가 이 신문의 보도를 총괄지휘하는 편집이사(Executive Editor)에 임명됐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가 눈길을 잡은 이유는 말할 필요없이 뉴욕타임즈의 행동이 우리나라 신문들의 관행과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 신문은 편집국장이나 이사가 새로 임명되면 1면에 회사의 인사명령 양식으로 새 사람의 이름과 직책을 공고한다. 그것이 전부다. 그 사람이 과거 어떠한 일을 했는지, 전임자는 왜 떠났는지, 신임국장의 포부는 무엇인지를 지면에 기사로 전달하는 경우는 본 기억이 없다. 이러한 한국식 공고는 담백한 맛은 있을지 몰라도 독자에 대한 배려가 담겨있다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식 인사보도 관행에 익숙한 나에게 이날 뉴욕타임즈 기사는 매우 흥미로운 분석대상이었다. 기사를 읽으며 가장 먼저 갖게 된 느낌은 이 신문은 자사 임원의 인사를 정부의 장관자리 이상으로 중요하게 취급한다는 점이다. 이 기사를 취재한 자크 스타인버그(Jacque Steingerg) 기자는 2000 단어가 넘는 장문의 기사를 발행인에서부터 말단 사회부 기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취재원들의 증언과 과거 자료를 동원해 철저하게 객관적인 사실들로 채웠다. 이러한 보도방식은 기사에 담긴 내용을 떠나서 신문사의 편집책임자가 미국사회에서 어느 정도 중요한 사람인가를 독자들에게 간접적으로 강조하는 효과를 갖는다. 이는 한편으로 언론계 이기주의 또는 자사 홍보의 사례로 보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언론사 인사의 투명성에 대한 자신감과 독자들에게 자기 회사의 중요 변화를 설명해야 한다는 책임의식의 표현이기도 하다.

기사의 앞부분은 신임 이사의 임명과 그에게 자리를 넘겨줄 임시 편집이사인 죠셉 렐리벨드, 그리고 제이슨 블레어 기자의 표절사건으로 6월 5일 사임한 하월 레인즈 전임 편집이사에 관한 사실들을 담았다. 이 기사는 이번 인사의 배경을 설명하며, 전임 이사와 편집국장인 제럴드 보이드씨는 블레어 사건으로 5주 이상 계속된 편집국의 혼란 사태에 책임을 지고 떠났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편집자와 기자들이 발행인에게 집단적으로 강력한 불만을 표시했다는 사실도 보도했다.

이 기사는 다음으로 켈러 신임 이사의 취임 수락연설을 인용하며, 그는 기사를위한 무한경쟁을 강조하는 편집국이 아니라 기자 개인들이 사생활의 행복도 추구하도록 분위기를 바꾸겠다고 다짐했다고 보도했다. 기사의 나머지 절반은 켈러의 과거 경력에 대한 소개로 채워졌는데, 여기서 주목할 내용은 물론 긍정적 과거를 주로 다루지만, 중요한 과오들 역시 빠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장 잘 알려진 잘못으로 이 기사는 중국계 과학자 웬호 리 사건을 제시한다. 2000년 9월 켈러가 편집국장으로 심층보도를 주도했던 이 사건은 웬호 리 박사가 중국에 핵무기 관련 비밀을 넘겨줬다고 몰고 가다가 오보를 자인하고 장문의 사과 기사를 게재했던 경우다.

스타인버그 기자는 기사 끝부분에서 다른 매체에 실린 하웰 레인즈 인터뷰를 인용하며 레인즈와 보이드 팀은 사표를 제출한 게 아니라 발행인이 해임한 것이라는 내용도 전하며, 이 문제를 확인하기 위해 그들을 인터뷰하려고 수차 연락했으나 응답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 기사를 읽으며, 뉴욕타임즈는 자사의 문제에도 마치 외부기관을 취재하듯 똑같은 취재보도 기준을 적용한다는 점을 느꼈고, 이러한 객관성과 투명성이 표절과 오보 등의 위기를 극복하고, 편집의 독립도 지켜주는 문화적 바탕임을 생각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