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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를 켜며] 동아일보 오보와 음모론

서정은 기자  2003.07.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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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가 굿모닝시티 윤창렬씨로부터 거액을 받았다는 정치인들의 실명을 공개했다가 결국 오보를 인정하고 사과문을 실었다. 사실 확인이 충분히 되지 않은 의혹이나 소문을 무조건 쓰고 보는 무분별한 행태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

그런데 이 와중에 일부 언론은 ‘386 음모론’에 열을 올렸다. 여권내 파워게임 속에 누군가 ‘설’을 동아일보에 흘렸고 따라서 동아일보가 억울한 피해자일 수도 있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동아일보가 취재원 보호를 이유로 자세한 경위를 밝히지 않고 있어 무엇이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문제의 본질은 동아일보가 대형 오보를 했고 대대적으로 사과문과 정정기사를 내보냈다는 점이다.

그러나 문제는 언론이 ‘음모론’을 제기하는 순간, 실제로 실체가 있던 없던 간에 하나의 ‘사실’과 ‘의제’가 돼버린다는 데 있다. ‘음모론이 음모다’ ‘보수언론의 이간질이다’ ‘실체가 없다’ 등등 논란과 공방이 확산되고 이러한 현상을 언론들이 또다시 보도하면서 재생산된다. 음모론이 제기된 배경과 본질을 규명하기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논란과 현상을 단순 전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중견기자는 “이번 ‘386 음모론’ 보도에서 우리 언론의 보수화 경향을 읽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보수언론에 의해 형성된 보수담론을 무비판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설사 의도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보수 아젠다를 확대 재생산하는데 일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음모론’이 사회적 논란으로 부각된 마당에 관련 내용을 보도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음모론’과 ‘음모론 보도’에 깔려있는 본질과 의도를 꿰뚫는 깊이있는 보도가 아쉬운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