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전 회장은 조부인 계초 방응모 선생의 비서로 지난 1943년 4월 조선일보와 인연을 맺은 이래 지병악화로 고문직에서 물러난 지난 1999년 3월까지 약 56년 동안 조선일보를 이끌어왔다.
방 전 회장은 지난 2001년 7월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뇌수술을 받은 뒤 병세가 호전됐으나 최근 급격히 건강이 악화돼 결국 생을 마감했다.
한국전쟁 당시 방응모 선생이 납북되자 조선일보 사장에 취임한 방 전 회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며 페허가 된 신문사를 수습하고 상황을 극복, 조선을 지금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또한 지난 76년 국제언론인협회(IPI)한국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이후 방일영장학회, 방일영국악상 등을 제정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생전에도 방 전 회장의 공과는 명백하게 나뉘어졌다. 조선일보 내부에서 공을 인정받는다면 외부로부터는 끊임없는 비판과 논란이 일어온 것도 주지의 사실. 조선이 국내신문 맨 앞에 위치하는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하는 물적토대를 마련했지만 권언유착 및 족벌체제 구축에 대한 비판은 늘 우초를 따라다녔다. 또한 안티조선운동, 계초 선생의 친자 방재선씨와의 쟁송 등도 그의 말년을 유쾌하지 못하게 했다. 언론사주의 무소불위 권력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줬던 ‘밤의 대통령’이란 칭호가 외부에서 그에게 붙여준 비판적 수식어가 아니라 내부에서 그를 칭송했던 미사여구였음은 그의 죽음 앞에 하나의 아이러니로 남는다.
12일 경기도 의정부 가능동 선영에 묻힌 우초 선생. 영욕의 생을 살다간 고인의 죽음 앞에 남은 두 개의 훈장에는 맨주먹으로 일어선 굴지의 기업인과 굴절된 현대사 속의 제왕적 권력이 교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