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승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에 대한 ‘몰래 카메라’ 사건은 권력핵심의 부적절한 처신이 본질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몰래카메라를 보도한 SBS에 대해 청주지검이 압수수색 영장 집행을 하면서 언론계 내부에 ‘취재원 보호 훼손’이라는 이슈를 던졌다.
토요일이라 쉬고 있던 지난 9일 필자는 집에서 뉴스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청주지검 수사관들이 이날 SBS 사옥에 도착, 압수수색을 집행하려다 대기중이던 40여명의 기자들과 물리적 충돌을 빚는 장면이 보도됐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많은 상념이 오갔다. 솔직히 ‘취재원 보호는 기자의 생명’이라는 당위론보다는 취재원 보호를 놓고 마음 고생을 했던 필자의 쓰린 경험이 되새김질 됐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교도소 내 조직폭력배들의 비리를 취재하던 때다. 당시 최초 제보자가 ‘조직폭력배들이 모 교도소 내에서 휴대전화로 조직을 관리한다’는 내용을 알려왔다. 필자는 구체적인 정황 확보를 위해 취재에 나섰지만 꼬리가 잡히지 않았다. 취재원들은 대부분 기사가 나가면 ‘해꼬지’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상황에 모든 것을 순진하게(?) 알려준 취재원이 나타났다. 교도소 내 정황을 누구보다 잘 알던 인물로 필자가 궁금했던 정황들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해줬다. 그이의 제보를 바탕으로 기사는 빛을 보게됐고, 결국 사건의 진상은 얼마 뒤 검찰수사를 통해서 자세히 드러났다. 그렇지만 당시 그 기사는 특종이란 흡족함보다는 심한 모욕을 받던 기억이 더 선명하다. 필자의 기사가 나간 뒤, 당국에서는 며칠간 사실관계를 부인하며 기사 자체를 ‘소설’이라고 비아냥댔고, 내부 관계자들은 협박성 전화나 게시판 투서로 익명의 취재원을 밝히라며 을러댔다.
필자의 동료인 Y기자의 곤혹스런 경험도 떠올랐다. Y는 유명 회사의 내부 비밀을 알려준 취재원으로부터 특종할 기회를 잡았다. Y는 그러나 점점 특종을 달가워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렸다. 취재원의 회사 고위간부들이 낌새를 눈치채고 누설자를 추적하면서 Y의 취재원이 극심한 초조-압박감에 시달리면서 고민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Y는 일부 내용을 두루뭉술하게 내부 관계자를 인용, 보도하는 타협을 택했다. 기사의 파괴력을 줄이더라도 취재원을 보호하고 싶었던 것이다. 다행히(?) 그 회사는 물증을 찾지 못해 Y의 취재원은 아직 무사(?)한것으로 안다.
얼마 전 필자는 Y와 술자리를 하면서 그 때를 떠올렸다. 과음한 탓에 주저리주저리 떠든 얘기가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충 ‘취재원 보호라는 명분을 떠나 인간에 대한 예의 아니냐’라는 쪽으로 끝맺음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