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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본 미디어 세상] 한국의 민주화와 미디어 권력

언론 권력화 논리적으로 규명

책으로 본...  2003.08.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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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락 전 기자협회 편집국장





대통령이 언론을 상대로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언론계는 대체로 심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여론 조사를 보면 많은 시민들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권위주의 시절이라면 언론이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조차 어려웠다. 만약 대통령이 기분 나빴다면 조용히 불러다가 손을 보면 그만이었다.

결국 대통령과 언론 사이의 갈등은 세상이 민주화한 덕분에 일어나는 일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민주화하면 언론이 대통령을 무조건적으로 물고 늘어지고 대통령이 언론을 고소하는 따위의 일은 당연한가? 아니, 왜 한국의 민주화는 이런 장면을 연출하는 쪽으로 진행되는가?

<한국의 민주화와 미디어 권력>(조항제 저, 한울 아카데미)은 우리 사회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와의 관계를 다룬 책이다.

이 책의 요지는 이렇다.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가 반드시 조화를 이루지는 않는다.’

‘언론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 언론은 다른 사회보다 훨씬 강력한 권력을 지니고 있다.’

‘한국 언론이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권력이 민주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리 새로울 바가 없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책의 가치는 진부하게까지 느껴지는 언론 운동 진영의 명제를 논리적으로 규명하고 뒷받침했다는 데에 있다.

이 책은 언론이 어떤 조건에서 권력화 하는지를 규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필자는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강력한 언론 권력이 어떻게 형성되고 작동하는지를 설명하였다.

이어 언론 권력의 본질이 무엇인지 학문적으로 규명하고, 후발 민주주의 사회 한국에서 언론 자유와 언론 권력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가로막는지 논의한다. 언론과 정부와의 관계에서 가장 바람직한 언론의 모습은 감시견(watch dog)이다. 하지만 언론과 정권과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한국 언론은 권위주의 정권에서 애완견 노릇이나 하다가 이제는 정권에 대해 무차별적 공격견의 행태를 보인다고 지적한다. 감시견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이때 공격은 기본적으로 언론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 공격은 불손하고 민주화를 가로막는다.

우리 사회의 주요한 일들이 다 그렇듯이 대통령의 소송을 둘러싼 기본 대립 구조도 보수-진보의 대치 구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그리고이러한 대치 구조가 드러내는 양상이 흔히 그렇듯이 진보 진영도 보수 진영도 정부-언론 관계에 지나치게 즉자적이고 이해관계 중심적인 접근을 하는 느낌이다.

이 책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정부와 언론과의 갈등을 직접 다루지는 않지만, 갈등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진보 진영 쪽의 깊이 있는 설명을 담고 있다. 보수든 진보든, 내 편이든 네 편이든 자신의 주장에 대한 깊이 있는 논리가 그리운 시절이다. 이 책의 주장에 동의하든 말든 주장에서 그치지 않고 그 주장의 근거를 논리적으로 따져서 제시하는 글은 주장만 있고 논리는 빈약한 현실에 오아시스 같은 느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