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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옹색한 변명으로 기자정신 훼손 말아야

기고  2003.08.27 14:4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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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철 한양대 신방과 교수





요즘 언론과 권력이 대립적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바람직하지만, 공정하고 정당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정부나 언론은 물론 미디어간에도 사이가 벌어져 경쟁의 도를 넘어 티격태격 소리가 커지고 있다. 무엇을 지향하기 위함인지 갈피를 잡기가 어렵다. 또 이를 성장과정으로만 해석하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며칠전 국정홍보처 차장은 홍콩에서 발행된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지에 대통령이 4개신문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기 위한 글에서 우리 기자를 왜곡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 결과 전체 기자사회가 발끈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후배 기자의 입장에서는 스스로 힘들게 지켜온 사명감과 전문성, 도덕성에 대한 모욕을 ‘선배 기자’에게 받은 꼴이 됐다. 정 차장이 과거의 치부를 요즘의 것인양 들먹인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의 정권이나 언론이 써먹던 수법이 되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의아스러울 지경이다. 외신에 먼저 흘려서 이를 국내언론이 인용케 하거나, 외신에 보도된 것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여론조작을 일삼았던 과거의 씁쓸한 악습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한쪽만 창피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도 함께 당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정부가 새 옷을 갈아입었다고 해서 과거 헌옷을 입었을 때의 정부가 우리의 정부가 아닌 것은 아니다. 과거나 현재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라는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더 많은 고민이 따라야 한다. 부분의 잘못을 전체로 비약하는 것은 어눌한 전략이다. 상처 난 부분을 치료하기 전에 몸 전체를 탓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전체와 부분에 대한 사려 없이 던진 엉뚱한 ‘설명’은 자칫 독존적인 착각에 젖어들게 할 수도 있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해결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외부가 아니라 내부의 책임이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우리의 문제를 외부에 떠넘긴다거나, 무조건 단절하려는 마음은 좁은 소견일 뿐이다.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시인한 것은 정직하다는 평을 받을 수 있으나 책임있는 정부기관에서 저지른 실수치고는 용납하기 어려운 궁색함이 있다.

뉴욕타임스 1985년 3월 10일자 칼럼에서 엔터니 루이스는 “이데올로기가 권력을 잡으면 이를 불편하게 하는 사실은 밀려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반대상황도 맞다.“사실이 권력을 잡고 있으면 개념, 신념, 의견은 짓밟히고 만다”라고 미첼 스티븐슨은 지적하고 있다.

언론과 권력의 관계가 밀착되어서는 사회발전을 도모하기 어렵다. 반대로 갈기갈기 찢어져서도 그 사회가 번성하기 어렵다. 전체를 위해 부분을 치유할 수 있다면 바람직 한 것이나, 부분을 위해 전체를 새판으로 유도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기자는 우리 사회의 마지막 보루이다. 언론이 시들면 기자도 힘이 꺾인다. 권력에 시들지 않는 언론과 기자정신이 우리 사회를 지탱할 때 발전의 기틀을 확고히 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