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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다시보기] 다원적 현실과 단편적 기사

이재경 교수  2003.09.03 11: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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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한국신문을 보면 언제나 온 나라가 부글부글 끓는다. 노사갈등은 하루를 거르지 않고, 진보와 보수, 반미와 친미의 갈등도 수그러드는 기미가 없다. 거기에 남녀, 세대, 남북 갈등까지 겹쳐지니 도대체 이렇게 해서 나라가 어디로 가는가를 걱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상황을 더욱 불안하게 하는 것은 역시 정부와 언론, 아니 더 좁혀보면 대통령과 일부 신문의 갈등이다.

그러면 한국사회만 유별나게 많은 갈등요소를 안고 있는가. 미국이나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들은 우리같은 갈등요인이 없는가. 노무현 대통령이 부시나 고이즈미, 또는 토니 블레어 등 선진국 지도자보다 유별나게 더욱 갈등 조장적이라서 이러한가. 물론 대통령과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방향이나 지지와 반대세력의 사회적 분포가 특정사회의 갈등양상에 구조적 원인을 제공하리라는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6개월 넘게 한미 신문을 비교하며 갖게 된 생각 가운데 하나는 어쩌면 한국 기자들이 기사를 쓰는 관행과 한국 언론이 고정적으로 사용하는 기사의 양식이, 본의 아니게 또는 기자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사회갈등을 조장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의구심이다.

사회를 불안하게 하려고 기사를 쓰는 기자는 없다고 믿는다. 나라를 위태롭게 하려고 취재하는 기자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는 기자나 언론사의 정치적 동기가 무엇인가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언론이, 언론사나 개인의 정파적 입장과 관계없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기사양식은 도대체 어떠한 결함을 갖고 있는가이다.

나는 한국 언론이 고쳐야 할 가장 고질적인 문제는 단편적인 취재관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달리 말하면, 일방적인 한 쪽의 진술을 그대로 받아서 사실로 확정해 보도하는 행위를 말한다. 취재원은 당연히 하나뿐이고, 반대쪽 관점이나 쟁점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은 전혀 제시되지 않는다. 기사를 보면 대체로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당 대변인은 저렇게 말했다” 또는 “민주노총은 파업을 결의했다”는 방식으로 되어있다. 더구나 이러한 기사들에 대한 가치판단에는 예외 없이 이분법적 사고의 틀이 담겨있다. 독자로 하여금 특정사안을 이분법적으로 소화하도록 유도한다는 의미다.

한국사회는 이미 상당히 다원적인 구조로변화했다. 노동현실만 보더라도, 모든 노동자를 하나의 이익집단으로 취급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현실이다. 미국에 대한 입장도 친미 아니면 반미의 양극단론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국민에게 현실을 규정해주는 언론인들이 이렇게 변화한 다원적 현실을 기사에 담아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니 이렇게 습관이 된 기사양식의 한계를 인식조차 못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기자들은 이 문제를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단순사고의 함정을 깨나갈 기사 양식을 개발해야 한다. 가능한 모든 쟁점을 다원적 시각에서 접근하고 다양한 가치가 기사에 제대로 반영되도록 취재관행을 개혁하고 기사의 틀도 혁신해야 한다. 특히 스스로가 개혁의 기수가 돼야한다는 당파성을 기사에 담아내려는 풍조는 가장 먼저 버려야 할 악습이다. 기자는 선동가가 아니라 메신저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