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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망치는 주범은 노동자?

'노사분규 때문에 외국기업 떠난다' 언론이 여론몰이

박미영 기자  2003.09.03 11: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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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네슬레, 월마트, 오웬스코닝 등 외국투자기업들이 노사분규 때문에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투자계획을 철회하고 있다며 노동자가 한국경제를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는 식의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노동자들은 사측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한 왜곡보도라고 반박했다. 특히 이들 언론이 과거에는 경제면이나 사회면 등에 작게 처리했던 기사들을 1면 머릿기사 등 주요기사로 처리하고 관련 사설까지 게재하는 등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25일 중앙일보는 1면에 ‘“노사분규 못견디겠다” 한국네슬레 서울사무소 직장폐쇄’라는 기사와 함께 5면에 “외국CEO 한국 지옥 같다 평가”라는 이 회사 사장 인터뷰를 게재했다. 또 ‘법과 원칙이 없는 최악의 근무지’라는 사설에서는 “걸핏하면 파업을 감행” “외국 기업인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가는 게 당연”하다며 “우리 경제가 살려면 외국인 투자는 필수적”인데 “노동자들이 나서서 들어와 있는 기업마저 등을 떠밀어 내쫓고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보도는 다음날 ‘한국네슬레 공장폐쇄도 검토’(조선), ‘노사분규 외국기업 쫓는다’(한국), ‘외국 기업들 “노조 때문에…”’(동아) 등의 기사로 이어졌다.

그러나 한국네슬레 노조는 이같은 보도가 사측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대변한 것으로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임금인상 때문에 생산단가가 독일보다 높아졌다는 보도와는 달리 독일네슬레 공장은 1주일에 32시간 일하는 반면 한국네슬레 공장은 50시간 일하고 있으며 △노조가 무리하게 임금 11.7%인상을 요구했다는 보도와는 달리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율은 9.2%로 기초적인 사실확인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민주노총 충북본부는 지난 25일 성명을 통해 “네슬레 자본이 거대중앙언론사를 등에 업고 악의적 노조 죽이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27일 동아일보가 1면 머릿기사로 보도한 ‘월마트, 한국투자 재검토…경기침체-노사갈등-북핵 고려’도 다른 신문에서는 거의 보도조차 되지 않은 사실을 노사분규와 연결지어 1면 머릿기사로 부각시킨 대표적 사례. 오마이뉴스는 같은 날 ‘동아 ‘월마트’ 기사는 노조 협박용?’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월마트가 추가투자를 안하는 이유는 한 마디로 한국 적응에 실패한 때문”이라며 까르푸의 경우 노사관계로 많은 내홍을 겪었지만 한국투자를 포기한다는이야기는 없었다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이 정도 기사를 단독으로 1면 톱에 올린 것은 국민들에게 ‘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주문을 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보도태도는 김천 오웬스코닝 공장 파업사태 때도 나타났다. 지난 7월 28일 조선일보와 매일경제는 “분규 석달 동안 잠 제대로 못자” “파업 계속 땐 3000만불 투자 유보” 등의 제목으로 오웬스코닝 사측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보도했다. 매일경제의 경우 “회사경영을 위한 노조와의 대화는 환영하지만…”이라는 블래직 사장의 말을 그대로 전했으나 이 사장의 경우 지난 4월 15일 교섭 시작 후 이날까지 22차례 교섭에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노조측의 주장이다. 또 조선일보의 경우 다음날 사설에서 노조의 극한투쟁 때문에 ‘오늘도 기업 하나가 이렇게 무너졌다’고 보도했으나, 직장폐쇄는 노동자의 쟁의행위에 대항해 사용자가 시행할 수 있는 쟁의행위 중 하나로 회사가 무너진 것처럼 보도한 것은 왜곡이라는 지적이다. 오웬스코닝 공장 역시 이 후 노사합의를 한 뒤 공장 재가동에 들어갔다.

박미영 기자 mypark@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