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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주장] DTV 새로운 논의 틀이 필요하다

우리의 주장  2003.09.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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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노조와 시민단체를 주축으로 디지털TV 전송방식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 지 벌써 3년째다. 정부가 채택한 미국식 방식의 이동수신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유럽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여기에 대해 정부는 전송방식을 바꿀 만한 이유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디지털TV 문제는 매우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사안이라 비전문가가 나서기는 쉽지 않다. 또 정보통신부의 주장대로 이미 우리나라는 미국식을 전제로 HD TV 등 디지털화에 착수했다. 우리 기업들이 미국식에 맞춰 오래 전부터 기술개발을 해왔고 관련 특허를 다수 확보하고 있는 점도 결정 번복을 어렵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다시 공론의 장으로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지금까지 사안을 처리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 지금까지 논의는 방송 종사자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정부가 대응논리를 펴고, 그 대응논리를 반박하면 다시 반박논리를 내는 식이었다. 일부 방송사에서 비교테스트를 하기도 했으나 ‘그 비교테스트를 인정할 수 없다’는 식의 엇박자가 계속되고 있다. 무려 3년 동안!

두 전문가 집단의 난해한 논리 싸움은 지켜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누구 말이 옳은지 판단을 내리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래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지루한 싸움을 당장 중단하고, 서로가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논란이 계속되자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방송 현업인들의 의사를 존중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연주 KBS 사장도 “백지상태에서 재검토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정통부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디지털TV는 완전히 새로운 TV다. 그와 관련된 국민의 지출규모는 적어도 수십조원, 많게는 수백조원에 이를 것이다. ‘강행’으로 얻을 이익이 얼만지는 모르겠으나 전문가 그룹인 방송 종사자들이 3년간 저토록 집요하게 반대하는데는 또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정보통신부의 논리에 타당성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이미 끝난 이야기”라며 시위를 진압하는 것처럼 밀어붙일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안을 전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공간으로 끌어내서, 정정당당하게 토론하고 결정하라. 조금이라도 음험한 밀실의 냄새가 남아서는 안된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모두가공감하는 기준을 만들어 비교 실험을 실시해야 한다. 실험의 주체는 “그 동안 손놓고 있었던” 방송위원회가 될 수도 있고 제 3자가 돼도 좋다. 그래서 실험 결과를 놓고 공청회를 열고 그야말로 ‘백지상태’에서 이 문제를 다시 봐야 한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 사업 추진이 늦어질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의혹을 털고 가야 한다. “혼자 가는 열 걸음보다 열이 가는 한 걸음”이 낫다는 명제는 여기서도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