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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재해와 언론

기자칼럼  2003.09.24 14:3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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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림 부산방송 사회부장





한반도 남동부 지역을 강타한 제14호 태풍 ‘매미’의 특징은 바람과 해일이었다. 바람은 부산기상청 관측으로 초속 42.7미터였으나 실제 해안지역의 바람은 초속 60미터까지 불었다. 강풍 때문에 대당 60억원이 넘는 부산항 크레인 11대가 무너졌고 33만 가구가 정전돼 전시를 방불케 할 만큼 암흑천지로 변했다. 전화불통은 물론 방송수신까지 불가능한 고립 상태에서 시민들은 최악의 공포에 떨어야했다.

부산경남의 경우 재산피해가 3조원대, 사망실종이 90여명에 이르렀다. 특히 이번 태풍의 가장 큰 피해는 해일 때문이었다. 일반 시민이나 언론조차 해일에 대처하지 못해 큰 피해를 자초했다. 취재기자들도 해일이 이렇게 무서운지 처음 보았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우리보다 앞서 태풍 ‘매미’가 초속 74미터의 강풍으로 강타한 일본 오키나와의 경우 인명피해는 사망 1명, 실종 1명에 불과했다. 미국 동부지역에 허리케인 이사벨이 초속 71미터의 강풍을 몰고 미국 동부 4개주를 강타했지만 재산피해에 비해 사망은 9명에 그쳤다.

이처럼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방재시스템이 완벽에 가깝게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태풍의 진로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언론과 공무원들이 주민들을 학교나 공공시설에 강제로 임시 대피시키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번 태풍 때 경남의 경우 강제적인 대피령을 내리지 않아 해안가 인명피해가 컸다. 또 미국은 허리케인이 강타한 다음날 신속하게 피해지역을 재해지역으로 선포했지만 우리 정부는 11일만에, 그것도 보상은 그로부터 20일후에야 나오는 특별재해지역선포라는 것을 내놓았다.

그동안 방송은 태풍이 강타할 때마다 정부의 안일한 대처나 방재시스템 미비 등의 문제를 제기해 왔다. 그리고 태풍이 지나가면 일정한 시간 후 점차 뉴스시간에서 사라졌다.

이런 행태가 태풍 ‘매미’ 이후에도 계속 반복돼야 하는지, 우리 사회와 우리 언론의 현 주소가 후진성을 면치 못한 것은 아닌지 이번 기회에 지독하게 자성해야 한다. 아직도 집과 논·밭이 날아가고 피눈물을 흘리는 이웃이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