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도 기자협회라는 게 있을까? 미국 기자들도 한국 언론인들이 화두처럼 안고 사는 그런 ‘고민’이라는 게 있을까? 지난 9월 12일부터 사흘간 미 플로리다주 템파에서 열렸던 미국 기자협회(SPJ·Society of Professional Journalists)의 연례대회와 미국 언론인들과의 만남은 이러한 소박한 물음에 작은 답변의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지난 1909년 그린캐슬의 DePauw 대학에서 저널리스트 후원재단 형식으로 출발한 SPJ는 1988년 현재의 이름으로 조직 명칭을 공식 전환하면서 미국 기자들의 최대 모임단체가 됐다. 신문 방송 종사자는 물론 최근의 온라인 매체와 저널리즘을 공부하는 학생과 선생들도 이 단체의 회원이 될 수 있다. 이번에 한국기자협회가 옵저버 형식으로 참관한 전미 기자대회(National Convention)는 SPJ의 연례 최대 행사다. 플로리다주의 작지만 깔끔한 도시 템파에서 열린 이번 컨벤션에는 미 전역에서 500명이 넘는 회원들이 참석해 주제별 분과위와 총회 등을 통해 저널리즘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졌다.
다양한 토론주제 눈길
우선 관심이 가는 부분은 주제의 다양성이었다. 20명 내지 많아야 30명 정도가 참여해 자유로운 토론을 벌이는 분과위 소주제를 잠깐 살펴보면 테러와 대정전 사태 등에 대비한 전력망의 신뢰성, 재무 회계 관련 초기 자료 분석요령, 취재 기피분야 저널리스트 채용하기, 경쟁 시장에서의 긴급뉴스 편성 요령, 언론인의 윤리, 어떻게 하면 보다 기사를 잘 쓸 수 있나? 경제기사 작성에 대한 전문가 조언, 재난·재앙 발생시 기사 작성 원칙, 스페인어 미디어의 중요성, 온라인 저널리즘의 윤리 문제 등등 취재와 관련해 발생할 수 있는 의문점들은 거의 망라된 것이었다.
노소가 망라된 분과위 회의장에서 백발이 성성한 기자들이 참으로 성실하고 진지하게 자신들의 의견을 발표하고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는 모습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다. 미국식의 자유분방한 토론문화야 익히 알려진 바였지만 자의식과 자기주장이 강한 언론인 사회에서 젊은 기자들과, 어떤 경우에는 저널리즘을 이제 배워가는 학생들과 격의 없이 토론에 나서는 노기자들의 모습은 경외로운 측면까지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또 미국의 기자들이 우리보다는 많은 시간을 보다 늦은 나이까지 취재 현장을 지키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나름대로의반성으로 다가왔다.
또 하나의 신선한 장면은 대회 첫날 점심을 겸한 총회장에서 연출됐다. 해외취재와 관련한 각종 상을 시상한 뒤 가진 ‘ROAST’라는 의식은 퇴임하는 한 선배 언론인을 위한 ‘야유와 회고’의 자리였는데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SPJ의 회장을 역임했다는 한 노언론인을 놓고 4∼5명의 후배들이 돌아가며 그와의 지난 일을 회고하는 자리였는데 굉장히 유머러스하게 진행되고 또 상당부분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그의 치부, 실수담을 적나라하게 소개하는 그야말로 웃겼다, 울렸다 하는 자리이다. 거의 한시간 이상 진행된 이 행사가 끝날 즈음에야 ROAST라는 뜻을 짐작할 만한 그런 행사였다. 후라이 팬위에서 고기 굽기를 뜻하는 ‘ROAST’의 뜻처럼 이들은 노언론인을 ‘조지면서도 띄워주는’ 화끈한 형식을 통해 그의 퇴직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것이었다. 마치 잘 구운 고기를 만들기 위해서처럼 말이다. 수십년을 쏟아부은 언론사를 떠나면서도 진심어린 축하 변변히 받지도 못하고 많은 경우 오히려 앙금을 남기고야 마는 한국 언론계의 현실에서 이런 한국판 ‘ROAST’는 언제나 가능할 것인가?
SPJ는 전미국의 언론사를 대상으로 한 조직이지만 적극적인 참여자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AP나 CNN NYT, WP 등 유명 언론사보다는 로컬 언론사가 많은 편이었다. 현재의 회장인 로버트 리거(Robert Leger)도 Springfield News-Leader의 편집장이며 차기 회장 선출자 역시 Tampa Bay Business Journal의 편집장었다. 미국 역시 거대 언론사는 자체 네트워크가 방대해 ‘협회’의 필요성을 덜 느끼는 편이겠지만 자율과 자유를 기본으로 하고 ‘로컬’의 규모가 우리의 ‘전국’에 해당하는 점을 헤아린다면 간판과 조직율을 앞세우는 우리의 해석 관행에 얽매여 SPJ를 평가해서는 오산일 것이다. 지난해부터 추진한 한미 기자교류의 효과로 SPJ의 회원사들인 미국 로컬의 언론사들이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리거 회장의 설명은-이들은 그간 거의 한반도에 무지했다, 관심이 없었다고 봐도 된다는 설명에 너무 놀라지 말자-폭넓은 교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되새기게 했다.
로컬 언론사 적극 참여
사실 한국의 저널리스트들은 한반도에서의 전쟁 방지, 북한 핵문제, 언론개혁, 공정방송 등 거대 담론을 아직도 숙명처럼 안고 살아가지만 미국 언론인의 화두는 조금 다르다. 미국편집인협회의 한 관계자가 설명하는 미국 언론의 최근 관심 3가지는 첫째, 대중들에게 정보를 어느 정도까지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 둘째, 독자 감소 문제를 어떻게 타개할 수 있나? 셋째, 증가하는 다양성을 어떻게 반영할 수 있나? 등이다. 정보 제공의 한계 문제는 9·11 테러 이후 심각해지고 있는 정부의 정보 공개 기피 상황과 맞물려 있는 것이고 둘째는 한국도 마찬가지인 신문 독자 감소 문제, 세번째는 히스패닉과 블랙의 증가로 2050년이면 백인의 과반 점유가 무너지는 사회 구성원의 변화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독자 감소문제 현안
미국 저널리스트들의 최근 화두라는 정보공개의 한계는 우리로서도 매우 중요한 논의과제이지만 그들이 첫번째로 내세우는 만큼이나 많은 고민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뉴욕에서 만난 언론인보호위원회(CPJ) 관계자가 사견임을 전제로 9·11테러 이후 정부 비판 기사-특히 이라크 전 관련-에 대한 상당한 압력이 있는 것으로 본다고 밝혔지만 포린프레스 센터, 프리덤 포럼, 미국 편집인협회 등에서 만난 언론 관계자들의 발언에선 원칙적인 얘기 이외에 보다 구체적인 답은 들을 수가 없었다. 우리의 사회와 언론계에는 ‘냄비 끓듯 하다’라는 부정적 표현이 있지만 아프간과 이라크라는 두 주권국가를 쳐 없애는데 너무나 기민했던 미국이 자신들의 치부를 진단하고 짚어내는 데에서는 너무 뜨뜻미지근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미국 저널리스트들의 한반도 인식이 얕은 것처럼 한국 저널리스트들의 미국 인식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얕을 수도 있다는 것 역시 아직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번 방문을 통해 다시금 확인했다.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가질 수 있는 가장 긴 여행은 어떤 여행인지 아십니까?” 이번 전미 기자대회에 초청돼 한국기자로서는 역사적인 첫 연설을 한 한국기자협회 이상기 회장의 이 같은 즉석 퀴즈에 미국 기자들은 매우 재미있어 했다. “가장 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여행입니다.” 1초가 채 안되는 아주 짧은 시간 뒤에 오는 깨달음! 500여 미국 저널리스트들의 끄덕임과 가슴 뭉클함을 자아내게 한 이 명답변으로 한미 기자교류의 본격적인 물꼬는 터진 느낌이다.
오는 10월 5일 서울서 열리는 동아시아 기자대회를 계기로 SPJ의 회원 10여명이 미국 기자단체 명함으로는 처음으로 서울을 방문한다.서울거리와 판문점, 그리고 제주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이 작은 땅 한국에서 그들은 무엇을 느낄까? 아니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느끼게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