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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언론소송 제한법 추진 논란

시민단체 "정당한 재판권리 침해하는 위헌적 발상" 지적

서정은 기자  2003.09.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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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언론의 비판기능을 위축시키는 이른바 ‘전략적 봉쇄소송’(SLAPP·Strategic Lawsuits Against Public Participation)을 제한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나 언론계는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17일 고위공직자나 권력기관이 언론과 야당을 상대로 무차별 거액소송을 내는 것을 막기 위해 ‘전략적 봉쇄소송 방지법안’(안티슬랩)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한나라당 이주영 인권위원장실 한 관계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안티 슬랩’ 관련 법을 모델로 할 생각이며 독자 입법으로 할지, 기존 소송관계 법규를 개정할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해 20여개 주에서 시행하고 있는 ‘안티 슬랩’은 △정부·대기업·공인의 행위에 대한 언론이나 시민의 비판에 대해서는 명백한 악의가 있다는 증거 없이는 소송을 제기할 수 없고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특별기각신청제도가 있어 90% 이상의 소송이 기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와 관련 지난 14일 논평에서 “참여정부를 표방하는 대통령과 측근들이 잇따른 무차별적 거액 소송으로 참여와 표현을 압살하는 현실을 결코 좌시할 수 없다”고 밝혀 법안 추진이 노무현 대통령의 소송 제기와 무관하지 않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언론시민단체에서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간과한 정략적 접근”이라며 반대와 우려를 표명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이 지난 대선을 앞두고 당시 이회창 총재의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한 원로 언론인 정경희씨에게 거액의 소송을 제기하는 등 언론을 상대로 적지않은 소송을 제기해왔다는 점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은 지난 16일 논평을 내고 “시민사회와 학계에서는 ‘언론의 허위보도로 인한 인권 침해’를 해결하기 위한 법·제도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제기하고 있다”며 “거대 언론사들은 기득권 층을 위해 허위·왜곡 보도를 남발하고 원내 제1당은 법까지 만들어 이들을 지켜주겠다고 나서니 힘없는 국민은 누구로부터 보호받아야 할지 참담하다”고 밝혔다.

언론인권센터도 지난 18일 성명을 통해 “한나라당의 ‘전략적 봉쇄소송 방지법안’ 추진은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한 무책임한 정치행태이자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위헌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장호순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는 “안티 슬랩은 대기업이 시민단체 등의 비판활동을 막기 위해 과도한 소송을 내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언론을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나온 제도가 아니다”라며 “명예훼손 소송이 남발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고 이를 차단하는 장치가 필요할 수도 있으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판례나 관행으로 정착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성규 변호사는 “한나라당은 대통령 소송을 반대하는 차원에서 문제를 삼으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겠지만 일단 법안 자체는 일리가 있고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지난 16일, 17일 각각 사설을 통해 “권력집단이 언론을 상대로 제기하는 이른바 ‘전략적 봉쇄소송’을 제한하자는 움직임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한나라당이 ‘반 전략적 봉쇄소송’ 도입을 검토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서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