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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한줄 안써도 '언론인' 사주들, 뒤에선 권력 독점

150년 전 프랑스 한국 현실과 비슷해

이경숙  2000.11.07 14:5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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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정치 저널리스트들들은 글을 아주 많이 쓰고서 이 직함을 얻어냈지만 이들은 글을 전혀 쓰지 않고도 저널리스트라 불린다. 사장, 주필, 사주 겸 편집장들은 항상 네 가지 직함과 네 가지 얼굴 중 하나를 내세워 자본가와 사업가, 투자가와 가까이 하고 있으며, 아무 것도 제대로 아는 게 없기 때문에 모든 일에 관여한다. 어떤 사업 그리고 한 인간을 밀어주는 일도, 반대로 매장시키는 일도 가능하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전부 거둬들이는 서커스의 단장과 같은 이러한 인간들은 자신을 신문의 혼으로 자부하고 있으며, 정부 내각은 반드시 그와 협상하지 않을 수 없다."



기사 한 줄 쓰지 않지만 언론사를 소유했다는 이유로 언론의 막강한 권력을 즐기는 신문 사주들의 모습&. 우리의 언론현실을 비판한 글일까? 아니다. 150여 년 전 프랑스 격동의 시기에 그 자신이 실패한 신문사 사장이자 논설위원이었던 문학가 오노레 드 발자크가 쓴 '저널리스트들-파리 언론의 모노그라피'의 일부내용이다.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기자의 본성에 관한 보고'(번역 지수희, 감역 윤호미 조선일보 출판부국장, 서해문집 출간)란 제목으로 15일 출간됐다.



이 책에서 발자크는 특히 신문 사주를 야심가, 사업가, 순수한 신문인 세 부류로 나누어 그 본성을 적나라하게 파헤쳤다. 야심가는 그가 지지하는 정치체제를 옹호하거나 자신이 정치적으로 두려운 인물이 되기 위해 신문을 만든다. 사업가는 신문을 자본으로 간주하고 그 이윤이 권력이나 쾌락 때로는 돈의 형태로 돌아오길 기대한다. 순수한 신문인은 신문사 경영자의 위치를 천직으로 생각하며 경영에도 이해가 깊고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는 데서 기쁨을 찾는 사람이다. 야심가와 사업가 부류는 신문을 수단으로 생각하는 반면 순수한 신문인에게는 신문이 자신의 재산이자 집이며, 힘이다. 전자는 사회적인 명사가 되지만 후자는 신문인으로 살고, 신문인으로 죽는다.



때로 사장과 편집인, 주필까지 겸직하는 이들 사주와 이들의 신문은 자신들이 공격하는 정부와 닮아 개혁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이들과 언론의 막강한 힘은 권력의 끊임없는 실수로 추락할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이밖에 갖가지 기자 군상에 대해 신랄한 비판이 벼려져 있다. 사소한 사건도 모든 면에서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국가정치에 이익이 되도록 결론을 내야 재능을 인정받는논설위원들,국회의원들의 흥망을 좌우하며 정치드라마를 연출하는 국회출입 기자들, 편집장이나 사주의 명령에 따라 기사를 빼거나 싣는 편집기자들, 1년에 수천의 책이나 연극을 보느라 정신이 없다고 하면서도 펜을 해부용 칼처럼 마구 휘두르며 활개치는 문예란 기자들&. 1843년 먼 이국의 기자군상에 오늘날 우리 언론인의 모습이 투영되는 것은 지성 발자크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 덕분일까, 아직 우리 언론이 신문 태동 초기의 수준이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