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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본 미디어 세상] 한국언론의 좌표

책으로 본  2003.10.01 13: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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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락 전 기자협회 편집국장



IPI가 한국의 언론 상황을 우려하는 결의문을 채택하고 ‘언론탄압감시대상국’ 지정을 유지하기로 했다. 보수 신문들은 대단한 일인 양 보도했고, 언론 운동 진영에서는 반발하고 나섰다.

얼마 전부터 늘 그랬다. 보수 언론은 현 상황은 정권이 언론 자유를 위협하는 위기 상황이라고 진단했고, 진보 진영에서는 막강한 언론이 무책임하게 언론 자유를 누린다고 규정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과연 한국의 언론 상황을 둘러싸고 보수-진보 양쪽이 동의할 만한 결론을 얻는 것이 불가능한가? 아마도 이럴 때 사회 원로가 필요할 것이다.

한국언론2000년위원회가 작성한 <한국언론의 좌표>는 이 의문에 대한 가장 근접한 해결책으로 보인다. 한국언론2000년위원회는 관훈클럽이 1995년 한국 언론의 현실을 진단하고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제안한 기구다. 이 위원회는 각계 저명 인사들로 구성되었다. 위원장이 정범모 한림대 석좌교수였고, 언론계의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 박권상 전 KBS 사장, 최창봉 전 MBC 사장 등과 권영성 서울대 명예 교수, 정의숙 전 이화여대 총장, 이세중 변호사,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 등이 위원이었다.

위원회는 몇 년에 걸친 활동 끝에 2000년 말 보고서를 책으로 발간했다. 그러나 위원회 구성 당시 언론계가 보여준 관심은 보고서에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위원회 활동이 부침을 보였고, 보고서가 날짜를 한참 넘겨 발행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보고서는 한국 언론의 현황과 문제점을 언론의 자유, 언론법제와 언론윤리, 언론 산업, 편집으로 나누어 진단하고 개선책에 초점을 맞추었다. 물론 이 보고서는 보수-진보 양쪽 가운데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양쪽 가운데 어느 쪽에건 발을 딛고 있는 사람에게는 미지근한 느낌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언론 자유에 관해서는 프리덤 하우스와 이번에 문제가 된 IPI의 평가 등 국제적 평가, 언론 수용자의 평가, 그리고 언론인의 평가 등을 고루 소개하면서 대체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반면 시장 독과점 해소 방안에 대해서는 언론 운동 진영이 주장하는 특별법 제정에 반대하면서 기존 공정거래법을 적용시킬 것을 권고한다. 여기에 덧붙여 경영의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론 부분의 언론계에 대한 제언을 보면 “언론의 자유와 독립은보장되어야 한다” “언론의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한다” “보도와 비판에 성역이 있어서는 안 된다” “발행의 자유가 오용되거나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 등이다. 어쩌면 이러한 ‘모호한’ 견해가 보수-진보가 첨예하게 맞선 한국 언론계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진짜 이유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한국 언론 상황에 대해 가장 오랜 기간에 걸쳐 가장 신중하고 또 주의 깊게 접근한 보고서가 아닌가 싶다. 언론학자들을 전문위원으로 위촉해 보고서를 위한 논문들을 집필하게 했고, 언론 운동가에서 보수 신문 사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언론 관계자들을 불러 의견을 들었다.

이 보고서가 진보-보수가 팽팽하게 맞선 언론 현실의 타개책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자신의 주장을 거리를 두고 돌아보는데는 이 보고서만큼 도움이 되는 책은 별로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