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초 중앙일보 비상대책위(위원장 조현욱)가 '삼성 신탁통치설'을 제기한 뒤 홍석현 사장은 13일 회사 간부들과의 면담에서 "적절한 시기에 발행인·편집인을 선임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에 따라 홍 사장의 거취와 이후 경영진 구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후임 인사가 홍 사장의 경영권 포기로 이어질 여지는 희박해 보인다. 홍 사장의 발언은 일단 현행 정간법 규정을 의식한 것이라는 게 중앙일보 간부들의 분석이다. 정간법에는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았을 경우 발행인·편집인이 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무엇보다 홍 사장 본인이 소유권·경영권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중앙일보의 한 관계자는 "사주로서 역할과 권한을 행사하는 것도 경영권이라고 한다면 소유권과 경영권을 지킨다는 게 사장의 뜻"이라며 "정부나 삼성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공정한 인사를 선임하지 않겠느냐"고 희망 섞인 전망을 밝혔다.
이에 따라 정확한 인선 시기를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누가 인선될 것인가와 홍 사장과 역할 분담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심의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중앙일보의 향후 지면 제작과 대응방향을 가늠하는 주요 실마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몇몇 인사가 차기 사장 후보로 거론된다는 설이 중앙일보 안팎에 돌고 있는데 이중에는 친삼성적으로 보이는 인물도 있어, 이들 가운데서 선임된다면 상당한 반발이 예상된다.
홍 사장이나 사측이 '신경 쓰는' 부분도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대위의 '삼성 신탁통치설' 제기와 곧바로 부장단·차장단의 '경영권 수호' 성명이 잇따른 것은 내부 구성원들이 인사권·경영권 문제를 얼마나 민감하게 받아들이는지 보여준다. 비대위를 비롯한 기자들은 '어떤 인사가 어떤 경로를 거쳐 선임되느냐'의 문제를 중앙일보가 내세우는 독립언론의 시험대로 판단하는 것이다.
비대위에서 공개한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중앙일보를 위한 행동임을 이해해 달라"는 홍 사장의 말도 이같은 맥락에서 나온 발언으로 파악된다.
결과적으로 중앙일보 향방은 정부나 삼성보다는 중앙일보 내부의 과제로 넘겨진 셈이다. 일차적으로는 홍 사장의 결정에 달려 있다. 여기에는 정황 상 정부나 삼성에서 중앙일보의 경영권 문제에 개입해 또다시 논란을 불러일으킬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뒷받침된다. 홍 사장 역시 "이미 삼성과 정서적 거리도 멀어졌다"고 전한 바 있고 소유권·경영권에 대한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미루어볼 때, 어떤 결정을 하든 '중앙일보를 위한 자신의 선택'으로 정리될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변수'가 있다면 검찰 수사 결과 추가 혐의가 드러날지 여부 등 홍 사장 개인의 문제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문제는 중앙일보가 '사주를 살리기 위한 대응'이라는 비판을 씻고 어떻게 독립언론의 면모를 구현해나갈 것인가 하는 지점으로 귀결된다.
이에 앞서 경영권 파문에 불을 당긴 것은 비대위의 11일자 특보였다. 비대위는 특보를 통해 '삼성 이건희 회장이 지난 6일 이제훈 부사장 금창태 고문 등 고위간부들을 불러 차기 사장을 낙점하는 등 경영·인사권을 접수하려는 조짐이 보인다'고 밝혔다. 아울러 '청와대가 삼성을 통해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파문은 사내에 급속히 확산됐으며 11·13일 부장단과 차장단은 잇따라 성명을 내고 ▷외부의 경영권 침탈 시도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비대위를 중심으로 한 일선기자들의 행동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사측은 "이 회장이 사태 전반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싶어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자리로 인사안은 결코 거론되지 않았다"며 "중앙일보가 다시 삼성으로 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청와대나 삼성측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완강히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