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노동당 창당 54주년이 되는 10월 10일을 기해 위성방송을 본격적으로 실시한다고 밝혔다. 약간 돈이 들긴 하지만 위성방송 수신용 접시안테나와 셋톱박스, 시스템 컨버터만 갖추면 안방에 앉아 조선중앙텔레비전 방송을 시청할 수 있게 됐다.
북한 라디오, 텔레비젼 방송의 개방, 본질적으로는 북한 언론매체의 보도를 남한 내부에서 공개하는 문제는 언론계에도 커다란 관심사였다. 가 볼 수도 없고 만나 볼 수도 없는 북한을 그나마 알 수 있게 해 주는 유일한 수단이 북한 언론매체의 보도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북한 방송의 개방을 100대 공약 안에 포함시키고 지난해 말에는 내외통신을 연합뉴스에 통합시키는 긍정적 조치를 취했다. 이로써 북한의 라디오 방송은 개방이 된 셈이나 텔레비전 방송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손아귀에 쥐고 놓아주질 않고 있다.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게 해 주는 텔레비전 방송은 북한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북한 동포들이 어떤 드라마를 좋아하는지, 무슨 옷을 입고 다니는지, 그들의 경희극(코미디)은 어떤 소재를 다루는지, 그 유명하다는 교예단은 어떤 재주를 부리는지, 만화영화는 그런대로 볼만하다는데 과연 그런지 등에서부터 지난해 한 때 논란거리가 됐던 북한 신임 외무상 백남순과 백남준이 과연 동일인물인지,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 조정관의 고위인물 접견 장면은 어떠했는지,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의 요즘 얼굴색은 어떠한지 등은 지금으로서는 텔레비전을 통해 알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일부에서는 북한의 언론이 선전선동의 무기이기 때문에 보여줘서는 안 된다거나 제한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언뜻 듣기에 그럴싸하지만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위성방송 시청을 막는다거나 선별적 시청을 허용하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일이 접시안테나 단 집을 쫓아다니면서 조선중앙TV를 시청하는지 다른 해외방송을 보고 있는지 알아내 법적으로 단속할 수 있다면 혹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무섭다는 국가보안법도 단순 시청을 처벌할 근거는 갖고 있지 않다. 세계화 국제화를 떠들면서 안테나 접시를 단속한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최근에 있었던 ‘강철 서신’ 사건은 북한TV 개방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그토록 강인하기 짝이 없는 강철을 부드럽기 이를 데없는능수버들로 만든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반성문에 근거해 말한다면, 이 사회의 교육이 아니라 북한의 현실이었다. 북한의 현실을 접하는 순간 눈에서 비늘이 떨어졌다는 뒤늦은 회오에서,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보여주는 것이 북한을 미워하는 사람에게나 북한과 친해보려는 사람에게나 모두에게 이롭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현재 북한TV를 시청하고 있는 곳은 정부기관 몇 군데 등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그동안 언론계에서는 정확하고 신속한 북한 보도를 위해서는 북한TV 시청이 필수적이라고 설득하기도 하고 애원도 하고 하소연도 해 보았지만 아직까지도 당국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국가정보원에서 매주 한 번씩 자체적으로 편집해 보내주는 비디오 테이프 하나로 만족하라는 것이다.
딱한 것은, 정부가 지금도 미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머리를 싸메고 날밤을 새야 할 난제들이 산적한 마당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는 북한 위성방송 시청 허용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니 하는 말이다. 타이콤-3 위성을 지구궤도에서 끌어내리면 모를까, 되지도 않을 일을 놓고 무슨 논의를 한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뭔가 잘못 전달됐을 것이라고 여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