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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다시보기] 좋은 기사의 조건

언론다시보기  2004.02.19 16:4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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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요즈음 뉴욕타임스를 비판하는 두 권의 책을 읽으며 도대체 좋은 신문, 좋은 기사의 조건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한다. 한 권은 뉴욕타임스에 25년을 근무했던 존 헤쓰(John Hess)라는 사람이 쓴 책으로 제목은 이다. 헤쓰는 이 책에서 주로 뉴욕타임스의 편집자들이 어떻게 권력과의 거래나 스스로의 아집 때문에 좋은 기사를 축소하거나 사장시키고 정의로운 기사를 쓰려는 기자들을 좌절시켰는가를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기술한다. 다른 한 권은 밥 콘(Bob Kohn)이라는 변호사가 쓴 이다. 이 책을 쓴 변호사는 보수주의자다. 그는 특히 90년대 새로운 발행인의 취임과 90년대 말 하월 레인즈라는 편집책임자 등장 이후 뉴욕타임스가 어떻게 진보적 시각에서 사실을 왜곡해 왔는지를 기사분석을 통해 제시한다. 이 사람 주장의 핵심은 1면에 실리는 기사들에서 의견을 사실인 것처럼 포장해 전달하는 뉴욕타임스의 보도 자세가 전통적 저널리즘의 정도를 벗어나도 크게 벗어났다는 것이다. 이 두 책은 모두 저자들의 개인적인 한계를 객관화하지 못하는 문제를 드러내지만 다른 한편으로 미국 사회의 언론 비판 문화가 얼마나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도 해준다.

여기서 이 책들을 소개하는 이유는 이 글들을 읽을 무렵 접했던 한국 신문 기사 두 개가 줄곧 마음을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우연히 두 기사는 모두 재벌회사들에 관한 내용이다. 하나는 두산그룹이 올 하반기에 신입사원 200∼250명을 채용하는데 업계 최고의 급여를 보장하겠다는 계획을 보도했다. 두 번째 기사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제2도약 시대 진입을 선언했다는 내용이다. 내년에 플래시 메모리 시장에서 삼성이 세계 1위로 올라섬으로써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의 절대적 우위를 유지하겠다는 삼성의 발표를 그대로 기사화 했다.

이 기사들을 보며 마음이 불편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소위 말하는 발표 저널리즘이 이제는 정부나 정치의 테두리를 벗어나 기업 뉴스에서도 버젓이 주류로 등장하는 현실을 이처럼 되풀이해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경영 계획 내용이 어떻게 사실로 둔갑해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언론은 기꺼이 그홍보 에이전트가 되기를 자임하는가? 과연 두산의 신입사원은 업계 최고의 대우를 받게 되는가? 이는 개인이 취업하는 회사의 사정이나 신입 사원의 개인적 자격 차이와는 관계가 없을까? 과거에 입사한 사람들의 처우는 어떻게 되는가? 삼성전자는 경쟁사의 어떠한 전략적 움직임과도 관계없이 내년에 플래시 메모리 분야에서 세계 1위의 점유율을 이룬다는 뜻인가?

마음이 불편한 두 번째 이유는 도무지 언제쯤 우리 언론에서 이처럼 발표만 갖고 쓰는 기사가 사라질지를 예측조차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요즘 한국에서 진행되는 언론에 관한 논쟁은 이러한 문제와는 전혀 무관한 정치색깔에 관한 말다툼 뿐이기에 나의 우려는 더 깊다. 영국의 노스클리프경(Lord Northcliffe)은 “뉴스는 누군가가 보도하지 못하도록 억누르려는 무엇인가를 의미한다. 나머지 모든 것은 광고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 정의에 따르면 두산과 삼성기사는 뉴스가 아니다. 헤쓰와 콘이 그렇게 신랄하게 비판한 뉴욕타임스는 이러한 기사를 아예 다루지 않는다. 자사 기자의 취재와 편집자의 판단이 담겨있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