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에게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나름의 역할이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제작은 제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입니다.”
멕시코의 영상운동가 크리스티안 칼로니코 감독이 지난 8일 민언련이 주최한 제3회 퍼블릭액세스 시민영상제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다. 사파티스타 활동이 시작된 지난 94년부터 10년 동안 카메라를 들고 이들의 활동을 기록해 온 칼로니코 감독은 “퍼블릭액세스란 기존 미디어의 상업성을 벗어나 민중들의 삶과 시각을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사파티스타는 치아파스 농민들을 중심으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체제 반대와 원주민 생존권 보장 등을 외치며 94년에 봉기한 민족해방군. 사파티스타는 그 후 반세계주의 운동의 귀감이 됐으며 지난 8월에는 ‘좋은 정부위원회’라는 자치정부를 수립했다.
멕시코의 퍼블릭액세스 운동은 정치상황과 관련이 깊다. 칼로니코 감독은 “68혁명을 경험하고 85년 대지진의 피해를 극복하면서 축적된 시민들의 자신감이 자신들만의 표현수단을 찾게 된 계기가 됐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90년대 비디오관련 기기들이 대중화되면서 시민들의 영상물 제작이 더욱 활기를 띠게 됐다. 무엇보다 200여편이나 제작된 사파티스타 활동이 퍼블릭액세스의 활성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멕시코에서 비디오 활동가들의 제작은 활발한 편이지만 실제 작품들이 시청자들을 만나기까지는 아직도 어려움이 많다. 칼로니코 감독은 “멕시코에서는 아직 TV를 통해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이 방송되지는 못하고 있다”며 “KBS의 월 100분 퍼블릭액세스 의무편성을 이뤄낸 것은 한국 시민운동의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시민들이 제작한 다큐멘터리가 비디오대여점이나 서점에서 유통되고 있는 멕시코의 상황은 오히려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점. 2000년 처음 실시한 비디오 다큐멘터리 영화제에는 매회 300편 정도의 응모작들이 참가하고 이 작품들은 멕시코 곳곳에서 매일 10편 정도씩 상영되고 있다.
퍼블릭액세스 운동에서 어려운 것은 역시 재정문제다. 칼로니코 감독은 상업방송을 제작하는 프로덕션을 운영하면서 이 수입으로 자신이 원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감독은 아직도 퍼블릭액세스가 일반 시민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드러냈다. “미국 헐리우드 영화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은5초 이상의 컷을 견디지 못하고, 생각하는 메시지가 나오면 지루해하거나 채널을 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역사의 기록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비디오 활동가들의 유대와 연대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그는 이라크침공 관련 <기억의 흐름>이라는 작품을 제작했으며 앞으로 사파티스타의 자치제도와 평화 행진을 다룬 작품을 계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