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대법원 2부는 <나는야 통일 1세대>를 써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교수에 대한 상고심에서 “이적 표현물이라 보기 어렵다”고 결정,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로써 97년 시작된 이적시비 논란은 일단락됐다. 6년만이다.
<…통일 1세대>는 굴절된 우리 현대사로부터 잉태돼 때만 되면 불거지는 색깔론의 대표적인 희생양이라 할 수 있다.
이 교수는 통일시대 주역이 될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통일교육교재가 전무한 현실에 착안, 이 책을 저술하게 된다. 이때가 95년 10월. 이 교수는 어린이들에게 통일 후 가장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 물은 뒤 이를 간추려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책을 써내려갔다. ‘통일이 되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까’ ‘북한 어린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어른들이 언뜻 보기엔 유치해보이기 까지 하다.
그러나 그로부터 2년뒤인 97년, 대선을 4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이 책은 갑작스럽게 언론의 관심을 받는다. 지은이의 양심은 색깔로 칠해졌고 책에는 용공 불온의 딱지가 붙여진 후에야 말이다. 이 교수의 책에서 영감을 얻은 통일부가 ‘마음의 거리를 좁혀야 통일이 된다’는 주제로 방송캠페인을 벌인 직후인 그해 7월과 9월 월간조선은 “통일원의 이상한 통일캠페인-통일되면 수도와 나라꽃이 바뀌나”라는 기사를 통해 책 내용 중 일부에 문제가 있다고 보도했다. 법원의 판결로 월간조선 두 개의 기사에 모두 반론보도문이 실렸지만 이번에는 검찰이 이 책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 공안바람을 일으켰다. 이 교수에 대한 출국금지, 공항 강제구인, 두 번의 영장재청구가 그해 말까지 이어졌으며 결국 통일에 대비한 기초적인 교재를 만들어보겠다는 한 법학자의 양심은 여지없이 뭉개졌다. 결국 <…통일 1세대>를 둘러싼 지리한 논란은 종지부를 찍게 됐지만 판결내용을 접하고도 개운치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적시비에서는 벗어났으나 이 교수가 입은 양심의 상처는 쉬 아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도 색깔 덧씌우기가 전가의 보도인양 인식하고 있는 일부 언론과 정치세력이 엄존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