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비오는 어느 날, 하버드대 교정에서 이 책이 시작됐다. 이날 미국에서 내로라 하는 언론인, 최고로 인정받는 언론학자, 저명한 저자 25명이 모여 저널리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술 발달로 커뮤니케이션은 점차 확장됐지만 상업화되고 오락화된 미디어 세계에서 정작 저널리즘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일치된 견해였다. 이들은 저널리즘을 되찾아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저널리즘이 무엇이며, 변하지 않는 원칙은 무엇인가를 찾는 정밀한 조사·연구가 시작됐다.
<저널리즘의 기본요소>(The Elements of Journalism, 빌 코바치 & 톰 로젠스틸 저, 이종욱 역, 한국언론재단 2003년 10월말 발간)는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원문으로 200쪽을 크게 넘지 않는 작은 책 속에 2년간 진행된 수많은 공개토론회, 언론인의 증언, 심층 인터뷰, 보도 분석 결과가 녹아있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미국 저널리즘 200년의 경험과 논의의 잠정적인 결산이라고 할 수 있다.
저널리즘을 되찾기 위해 아주 새로운 비방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아주 기본적인 요소, 그래서 그것 없이는 저널리즘이 저널리즘으로 존재할 수 없게 만드는 것만을 정제했다. 제시된 9개의 원칙 중 우리에게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잘 알려진 ‘좋은 말’을 모두 모아 놓은 것도 아니다. 우리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균형성과 공정성은 빠져 있다. 이런 개념들이 너무 모호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러나 규명이 어렵다고 해서 필요한 원칙을 뺀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진실추구’와 같은 난제도 ‘첫 번째 그리고 가장 혼란스러운 원칙’이라는 부제와 함께 제시했다. ‘객관성’ 개념은 빼버렸다. 너무 ‘난도질당해’ 오히려 고쳐야 할 관행을 표현하는데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본질은 ‘검증의 저널리즘’(Journalism of Verification)이란 용어로 책의 중요한 내용이 되고 있다.
책 내용은 원칙을 말하고 그 중요성을 규범적으로 역설하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원칙이 의미하고 함의하는 바를 이 책은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존슨 대통령의 명으로 베트남을 방문한 맥나마라 국방장관이 기자회견에서 당시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언론은 이를 그대로 보도했다. 8년 후 그것은 거짓말로 드러난다. 책은 이를 언론이 진실추구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사례라고 지적한다. 발표 내용을그대로 전달하는 것만으로 저널리즘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공중의 포럼’ 장은 언론이 근거 없이 제기한 의혹 때문에 한 사람이 어떤 고통을 받았는가를 4쪽에 걸쳐 자세히 소개한다. 권력자에 대한 의혹 제기가 언론의 의무이며, 그 진위는 사법부나 다른 곳에서 가릴 수 있다는 태도가 가져오는 폐해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각각의 원칙들에 대한 이론적인 논의도 소홀히 다루지 않았다. 단지, 이론이란 냄새가 나지 않게 서술되어 있을 뿐이다.
이 책은, 번역되기 전부터 적지 않은 언론인과 학자들 사이에 회자됐다. 서평 필자도 이 책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려왔다. 번역체 문장을 꺼리는 사람들은 원문을 잡아도 좋을 것 같다. 비교적 읽기 쉽게 쓰여있기 때문이다.